제11차 한미 방위분담금특별협정(SMA)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순 없겠지만, 이번 협정으로 발생한 외교적 부담이 다음 정권, 그다음 정권에까지 되물림되며 문재인 정부의 패착으로 영영 기억되진 않을까 걱정이다.
한미는 지난 3월 향후 5년간 적용될 새 SMA 합의를 타결했다. 1991년부터 한미가 체결하고 있는 SMA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 중 한국이 분담해야 할 액수를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주한미군 주둔 비용 중 한국이 내야 할 몫에 대한 협정이고, 당연히 지난 협정 대비 '분담금 인상률'이 매 협상의 최대 쟁점이다.
이번 협상에서 한국은 전년(2020년) 대비 13.9% 인상된 1조1,833억 원을 미국에 지불하기로 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50% 인상을 요구했던 것을 감안하면, 13.9%라는 인상률은 언뜻 나쁘지 않은 결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함정은 차후 인상률 적용 '기준'에 있었다. 대체로 '물가 상승률'을 적용해왔던 전례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2022~2026년 한국의 '국방비 증가율'을 방위비분담금 인상률에 연동키로 한 것이다. 지난해 한국 물가 상승률은 0.5%다. 반면 국방비 증가율은 6.1%(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로 예상된다. 이를 적용한 2025년 한국의 분담금은 1조5,000억 원을 웃돌겠다.
협상 대표였던 정은보 금융감독위원장은 합의 타결 당시 "합리적이고 공평한 분담 수준을 만들어 냈다"고 밝혔다. 무엇이 합리적이고 어째서 공평하냐라는 물음에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국방비 지출이 우리의 국력"이라며 "국력에 맞게 동맹에 기여한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격에 걸맞은 적절한 수준의 동맹 유지비를 내야 한다는 말에 토를 달긴 어렵다. 반면 국력의 기준을 왜 하필 매년 5~6%대 인상이 불가피한 국방비로 잡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내놓지 못했다. 세금 지출 계산법이 달라졌으니, 어째서 바뀐 것인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근거를 내놔야 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다. 하지만 외교부는 '국방비가 국력'이라는 아득한 설명만 되풀이했다.
합의 타결 5개월 뒤에야 외교부는 국방비 연동이 패착이었음을 시인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다음 협상에서는 국방 예산 증가율과 (분담금을) 연동하지 않고 더 현실적인 방안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이것(11차 SMA)이 향후 협상의 전제가 되지 않는다는 양해를 한미가 확실히 했다"며 차기 정부에 국방비 연동 시스템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까지 던졌다. 말하자면, 나는 "바담 풍" 했지만, 너는 "바람 풍" 하라는 얘기다.
과연 다음 정부가 '바람 풍'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번 구성된 '방위비 연동제'라는 선례를 미국이 쉽게 놓아줄 리 없기 때문이다. 다음 협상 테이블에 앉은 미국이 계속해서 방위비 연동을 주장하며 "그때 분명히 한국이 '공평한 합의'라고 평가하지 않았느냐"라고 따진다면, 우리는 뭐라고 반박할 수 있을까.
행여 물가 상승률 기준으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국방비에 연동시킨 분담금은 이미 1조5,000억 원까지 오를 대로 오른 뒤다. 한번 잘못한 협상에 따른 부담은 온전히 다음 정권의 몫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