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마약도 하는데 저는 왜 예술 뽕도 못 맞아요?”

입력
2021.09.09 18:00
19면
젊은 영화 예술가들의 초상 그린
서이제 소설집 '0%를 향하여'


‘젊은 예술가’를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뮤지션 이랑이 2017년 열린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 상을 받은 뒤 무대에서 트로피를 즉석 경매 부치는 모습이다. “1월에 전체 수입이 42만 원”이라며 수상 소감의 운을 뗀 그는 “어렵게 아티스트 생활을 하고 있으니 상금을 주면 감사하겠는데 상금이 없어서 이걸 팔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트로피는 그 자리에서 50만 원에 낙찰됐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예술인 실태조사(3년 주기로 시행)에 따르면 응답자의 72.6%가 월수입 100만 원 미만이다. 올해 새로 발표될 실태조사 결과는 코로나19 여파로 이보다 더 처참할 게 분명하다. 누군가는 앞선 장면과 이 통계를 보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가난한데 왜 예술을 해?” 하지만 이렇게 다시 물을 수도 있다. “그렇게 가난한데도 할 수밖에 없는 예술이란 도대체 뭐야?”

서이제의 첫 소설집 ‘0%를 향하여’를 읽으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는 마약도 하는데, 저는 왜 예술 뽕도 못 맞아요? 왜 저는 그것도 하면 안 돼요?”라고 부득부득 말하는 소설 속 젊은 예술가들 앞에서는 쉽사리 왜 예술을 하냐고 따져 물을 수 없다.


2018년 중편소설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으로 문학과사회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서이제 작가는 본래 영화를 전공했다. 자연히 책의 등장인물 대다수가 ‘영화예술인’이다. 이들은 “코닥이 필름 생산을 중단”한 시대에 “영화 하는 척하는 고주망태 새끼들에게 영화감독 취급을 받는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스무 살 아이들과 함께 맥도날드 패티를 열심히 굽는다 한들 평범한 어른 취급도 받지 못할 나이”를 살아간다. 말하자면, 영화를 만들고는 싶은데 무기력한 현실 앞에서 이도 저도 못하는 ‘찌질한’ 청춘들이다.

“요즘 시나리오 쓰고 있어요.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만큼이나 자주 하는 거짓말을 엄마에게 또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러 카페에 온 게 맞긴 했다. 다만 쓰지 않을 뿐”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 중)

게다가 이들이 만들려는 영화는 큰 관객이 들지 않고, 때로는 동료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그보다 더 자주 자기 의심에 시달리게 되는 '독립 영화'다. 외부적인 요인으로는 영화를 계속해야 하는 당위성을 찾기 힘들어 끊임없이 ‘왜 영화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스스로 만들어내야만 하는 영화다.

“아무래도 영화 같은 건,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다. 독립 같은 건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미래가 없고 (...) 미래가 없고 (…) 미래가 없다. 나는 언제까지, 이 생각을 언제까지 지속시킬 수 있을까. 지속시킬 수 있을까.”(‘0%를 향하여’ 중)


그러나 이들의 '자조'가 '비관'과 동의어인 것은 아니다. 자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못한 채 영화를, 예술을 계속하고 있는 자신을 위무하는 행위다. “나는 내가 영화감독인지, 과외선생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그냥 백수인지 뭔지 모르겠어” 라면서도 매번 영화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에 굴복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리하여 ‘0%를 향하여’는 “없음이 아니라 ‘0이라는 존재’의 있음”이자 “불가능성의 지금 여기 있음”의 의미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 글러먹었는데 무엇을 또 하려고? 그래도 다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하려는 일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짓이 되어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인생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저는 오랫동안 믿어왔습니다 (…) 제가 생각하는 희망은 밝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아니라, 제대로 될 가능성이 없음에도 계속 앞으로 갈 수 있는 강렬한 힘을 의미합니다. 희망을 품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이제 작가

예술에 관한 가장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뒤 4년, 얼마 전 뮤지션 이랑이 새로 내놓은 앨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술을 해야만 하는 이유 그 자체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젊은 예술가들의 멋진 창작물을 직접 만나보시길.

한소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