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약 3개로 한정…"제약소비자, 믿고 먹을 수 있는 약 늘 것"

입력
2021.09.15 19:00
개정 약사법 시행으로 '복제약 찍어내기' 제동
제조·판매 중단 '발사르탄 사태'의 교훈
제약업계 "체질개선 불가피…특정질환 등 블루오션 공략해야"

지난 2018년 고혈압 환자들은 자신이 복용 중인 약을 꺼내 성분명을 확인해야만 했다. 고혈압 의약품으로 사용되는 발사르탄 성분의 원료의약품에서 발암 추정 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발사르탄이 함유된 제품은 당시 570여 개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발암물질이 검출된 170여 품목의 제조와 판매가 일제히 중단됐고 무분별한 복제약 생산에도 제동이 걸렸다.

이른바 '발사르탄 사태'다.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의 품질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 복제를 넘어 후발의약품(시간상 나중 개발된 복제약)이 제약소비자의 필요를 충족시킬 추가 효용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1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임상시험 자료 공동이용 제한(1+3)'을 규정한 개정 약사법 시행으로 무한정 제네릭을 만들기 어려워지면서 품목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변화에 직면한 탓에 일각에서는 "제제(製劑) 연구와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생동성시험) 등에 투자할 연구개발(R&D) 자금이 부족한데 제네릭 허가를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대형 제약사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제약소비자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제약업계는 "장기적으로 '믿고 먹을 수 있는 약'이 늘어 제네릭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손쉽게 제네릭을 찍어내 팔던 방식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제약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태진 서울대 보건대학 교수는 최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책보고서에서 일부 중소제약사의 어려움을 우려하면서도 "제약산업의 건전한 성장과 제네릭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선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장병원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도 "백화점식으로 전 품목을 다 취급하는 대신 강점 있는 특정 질환에 집중 투자해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위탁생산 전문기업은 스마트공장과 공장자동화, 설비 업그레이드 등 양질의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과 역량을 갖춰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로 삼고, 제네릭 생산 기업은 제제연구와 선진 품질관리 기준(미국의 cGMP, 유럽의 EU GMP) 확립을 통해 품질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언젠가 한번은 손질이 필요했다는 게 식약처와 제약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제네릭 생산을 지속하더라도 특정 질환에 집중해 전문성을 키우거나, 다른 회사들이 만들지 않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직 신약개발에 진입하지 못한 제약사 중 유망한 오리지널 제품을 도입하거나 특정 영역의 질환에 집중해 성공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사례가 그 근거다. 명인제약과 환인제약처럼 신경정신과(CNS)에 특화했거나 한림제약, 태준제약 등 안과에 특화한 회사들이 대표적이다. 일반 복제약이 아니라 약물전달기술(DDS)을 바탕으로 기존 약을 다양한 신제형으로 개발하는 비씨월드제약, CTC바이오 등도 선택과 집중의 또 다른 예다.

개정 약사법 시행으로 제약업계의 R&D 역량 강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동일한 성분이라도 다른 형태로 투입하는 제형을 개발하거나, 복용 편의성을 높이는 등 '차별화한 경쟁력'으로 시장에서 승부를 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미국, 유럽과 달리 국내에서는 동일한 생동성 시험이나 임상시험 자료로 제품을 허가 받는 제한이 없어서 제네릭이 우후죽순 생겨났다"며 "제한된 시장에서 같은 성분 품목이 지나치게 난립하다 보니 발암물질 검출과 임의 제조 등으로 최대 수백개 의약품이 회수되기도 했는데 복제약 허가 구조가 바뀌면 이런 품목수가 줄고 안정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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