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인 선발보다 못한 국민의힘 '대선공약 발표회'... "선관위 유치한 결정"

입력
2021.09.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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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동안 후보 12명 공약 발표
질문도 1인 1회... 후보들도 '부글'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열기가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지난달 비전발표회에 이어 7일 공약발표회마저 싱겁게 끝나면서 흥행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당내 주자가 12명이나 돼 제대로 된 행사 진행이 어려운 데다, 당을 향한 후보들의 불신도 뿌리 깊어 흥행은커녕 ‘원팀’이 가능할지 비판과 우려만 쏟아진다.

이날 서울 강서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열린 정책공약 발표회에는 국민의힘 대선후보 12명이 모두 참석했다. 각자 7분씩 공약을 발표하고, 미리 추첨으로 선정한 다른 후보와 2분 동안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방식이었다. 후보 한 명이 발언할 수 있는 시간이 9분이 채 안 되는 셈이다. 당연히 경선의 치열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후보 개인의 주장만 늘어놓고 끝나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일자리 공약 설명에만 집중했다. 그는 “일자리는 국민의 삶 그 자체이고 최고의 복지”라며 기업 성장에 의한 민간 주도 일자리 창출과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이라는 ‘쌍끌이’ 전략을 소개했다. 하지만 최근 다른 후보들의 맹렬한 추격에도 ‘내가 최종 후보가 돼야 하는 이유’ 등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도리도리’ 습관을 의식한 듯 발표 중간부터는 아예 시선을 아래로 고정하고 원고만 읽어 내려갔다.

다른 후보들도 본인의 경쟁력을 내세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홍준표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를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비유하며 “경기도 차베스를 잡을 사람은 홍준표”라고 주장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여권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상대로 자신을 꼽았다는 영상을 틀고 “민주당은 제 중도확장성을 두려워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15일 예정된 1차 예비경선(컷오프) 전 후보 12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유일한 자리였다. 그러나 모든 후보의 면면을 선보이겠다는 당 지도부의 욕심은 화를 불렀다. 경쟁도, 불꽃 튀는 설전도 없었다. 질의자를 미리 정해 놔 주요 주자들끼리 말 싸움 자체가 불가능했다.

후보들도 한목소리로 ‘맹탕’ 발표회를 비난했다. 유 전 의원은 행사 뒤 취재진과 만나 “토론도 안 하고 질문자도 추첨으로 정하고, (당) 선거관리위원회가 왜 이렇게 유치한 결정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도부를 직격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 역시 “발표만 하고 끝나 토론만큼 깊이 들어가는 게 어렵다”고 했다. 당 선관위 관계자는 “후보가 많다 보니 토론 진행이 어려운, 현실적 제약이 있다”고 한계를 인정했다.

밋밋한 행사에 유권자들이 관심을 보일 턱이 없다. 이날 발표회가 생중계된 국민의힘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의 실시간 시청자는 2,000~4,000명대에 그쳤다. 앞서 7월 민주당의 ‘국민면접 1탄’ 시청자(900명)보다는 많지만,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대회 ‘나는 국대(국민의힘 대변인)다’ 결승 시청자(3만3,000명)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손영하 기자
박재연 기자
최재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