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 뒤흔든 텍사스 낙태 금지…“지난 대선, 공화당의 위기서 시작”

입력
2021.09.0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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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텃밭 텍사스조차 위태로웠던 지난 대선 이후
투표권·총기·코로나19 이슈마다 극단적 우클릭 행보
유사한 임신중단 금지법 개정 추진 최소 7개주에서


"낙태(임신중단), 투표권, 총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텍사스 공화당은 여기에 올인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한 텍사스주(州)의 임신중단 금지법 시행을 현지 언론들은 텍사스 공화당 '우클릭' 행보의 일환으로 규정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전통적 텃밭인 텍사스주에서 예상보다 많은 민주당 표를 확인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공화당이 집토끼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4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텍사스 공화당 안에서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같은 철학은 극단적 보수세력인 '도널드 트럼프'파에 자리를 내줬다"고 전했다. 부시 부자의 정치적 고향인 텍사스의 공화당이 예전과는 다르게 극단적인 정책과 수사를 펴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 사례가 '심장박동법' 시행이다. 이는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 임신 6주 이후 임신중단을 하면 성폭행 등에 의한 임신이었다 해도 예외 없이 처벌한다'는 내용으로 입덧 등 신체적 변화를 느끼는 시기가 임신 9주쯤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임신중단 금지법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이 법이 통과될 당시 텍사스주 상·하원 어디서도 반대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은 없었다.

변화의 결정적 계기는 지난 대선이다. 1976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당선 이후도 단 한 번도 민주당 후보가 지지를 받지 못한 텍사스주에서 지지층 균열이 포착된 탓이다. 미 CNN방송에 따르면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득표율(52.1%)은 경쟁자인 조 바이든(46.5%)과 단 5.6%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양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16%포인트(2012년)에서 9%포인트(2016년), 5.6%포인트(2020년)로 좁혀지고 있다. 결국 승리를 거뒀으나 공화당의 불안은 커졌다.

그 결과 텍사스주에서는 보수 결집용 굵직한 정책이 쏟아졌다. 가장 최근인 지난 1일에는 21세 이상은 아무런 훈련이나 허가증 없이, 배경 조사를 받지 않아도 자유롭게 권총을 소지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총기소지법이 시행됐고 전날에는 부재자투표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 선거법은 유색인종 유권자의 투표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컸던 법안이다. 공화당 출신의 그렉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는 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으로 환자 수가 급증하는 가운데서도 지난달 지자체가 마스크 착용과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지 못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려 논란이 일었다.

텍사스 공화당의 이런 행보에 다른 지역도 동조하기 시작했다. 아칸소, 플로리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사우스다코다 등 최소 7개주에서 공화당 인사들이 임신중단을 금지한 텍사스 주법을 반영해 주법을 재검토하거나 개정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WP는 "텍사스는 미국의 발칸화(적대적 지역 분열 현상)의 한 예"라며 "공화당 우세 지역과 민주당 우세 지역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으나 어떤 주도 텍사스만큼 극단으로 가진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임시중단 금지법의 후폭풍이 워낙 거세 기대만큼 공화당 지지율 상승에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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