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수 진영과 공화당의 텃밭인 텍사스주(州)에서 낙태(임신중단)를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법이 1일(현지시간) 시행에 들어갔다. 이로써 이 지역 여성들은 임신 6주가 지나면 태아를 지울 수 없게 됐다. 강간이나 근친성폭력에 의한 임신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당과 시민단체들은 이 법이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연방대법원 판례에도 어긋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른바 ‘심장박동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 6주 이후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게 뼈대다. 그러나 입덧 등 신체적 현상은 임신 9주쯤에야 나타나기 때문에 이 시기엔 임신 사실 자체를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임신중단 원천 봉쇄의 효과를 내는 법”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심지어 기존 법에서 ‘예외’로 인정됐던 성폭력 피해자조차도 이제부터는 똑같이 적용 대상이 됐다.
앞서 미 연방대법원은 1973년 태아가 자궁 밖에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단계(임신 22~24주) 이전에는 임신중단이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로 대(對) 웨이드’로 불리는 이 판결은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인정한 기념비적 판결이다. 이에 따라 각 주의 관련 법도 대부분 임신중단 금지 시점을 20주 안팎으로 정하고 있다. 텍사스주 역시 기존 법에선 임신 20주 이후였는데, 이번에 기준을 대폭 강화한 것이다.
새 법은 불법 임신중단 행위를 주정부가 직접 단속하지 않고, 시민들이 제소하도록 규정했다.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우회하기 위해서다. 불법 시술 의심 병원뿐 아니라, 여성을 병원에 데려다준 사람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소송을 낸 시민에겐 1만 달러(약 1,160만 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대해 “주제넘게도 ‘로 대 웨이드’ 판결로 확립된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다”며 “특히 유색 인종 및 저소득층 여성의 의료 서비스 접근을 심각하게 방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텍사스주에 사는 여성들에게 재앙을 가져왔다”(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헌법에 위배되는 임신중단 제한을 막을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 등 반발도 나온다.
시민단체들은 연방대법원에 텍사스주의 법 시행을 막아 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이날 자정 직전 기각됐다. 대법관 9명 중 5명이 기각 의견을 냈다. 다만 연방대법원은 “텍사스주 법원 등에서 본안 소송 절차를 진행할 순 있다”며 해당 법의 합헌성을 인정한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텍사스주에서 임신중단 시술을 하는 병원들은 새 법 발효 전날인 지난달 31일 자정 직전까지 밀려드는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포트워스의 한 여성병원 관계자는 “오후 11시 56분 마지막 예약까지 하루 동안 117명을 진료했다”며 “6시간 대기한 환자도 있었다”고 NYT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