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기일은 365일입니다."
피해자 7,500여 명(신고자 기준)를 낳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8월 31일로 꼭 10년이 됐다. 세상을 떠난 피해자의 유족들은 거센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추모제를 열고 이 사건을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낮 12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주최로 진행된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은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0년, 1994년 SK(당시 유공)가 첫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출시한 지 27년"이라면서 "대한민국은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에 공개 사과 및 재발 방지 약속과 함께 전국에 있는 피해자를 찾아낼 것을 촉구하고, 관련 기업들엔 모든 피해자에게 배상할 것을 요구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2011년 8월 31일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 정부는 원인 미상의 폐질환 환자 18명에 대한 역학조사를 진행하고 가습기살균제를 위험 요인으로 추정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에 따르면 이달 20일 기준 피해 신고가 접수된 사람은 7,535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1,687명은 숨졌다.
추모제는 숨진 피해자들의 유품 전시로 시작됐다. 의료용 산소통부터 의약품, 농구공, 독서대, 레코드판 등 고인이 평소에 사용했거나 좋아했던 물건들이 세종문화회관 계단 위에 하나씩 올려졌다. 산모와 아동의 피해가 많았던 터라 인형이나 장난감이 많았다. 김태종(63)씨는 지난해 숨진 아내가 투병 시절 사용한 필담 노트를 공개했는데, 노트엔 '자꾸 움직이면 목이 아파서 못 참겠다' 등 고통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김씨는 "얼마나 많은 이가 고통을 당하고 죽었는지 호소하려고 전시에 나섰다"면서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 조사를 맡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라며 "기업, 정부, 지식인이 결합해 만든 비극의 진상은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피해 지원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각성을 촉구했다.
사참위는 정부에 신속한 피해 판정과 지원을 촉구했다.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으로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여전히 피해를 인정받기까지 평균 1년 이상 걸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참위는 "건강 피해 신고자 7,535명 중 6,200여 명이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피해 판정만 기다리고 있다"며 "환경부 등 주요 관계 기관은 책임감을 갖고 피해자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사참위는 △가해 기업의 조속한 배상 및 보상 △재판을 통한 제대로 된 처벌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