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기관에 협력했던 현지인을 국내로 이송하는 '미라클' 작전이 27일 오후 중간 기착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남았던 13명이 입국하면서 마무리됐다. 분쟁지역의 외국인 390명을 우리 공군 수송기에 태워 제3국을 거쳐 인천국제공항으로 이송한 전례가 없었던 데다 급변하는 현지 상황에 작전 계획이 수시로 바뀌었다. 이번 작전이 무사히 종료된 것에 대해 "천운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송 작전을 현장 지휘한 김일응 주(駐)아프간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은 탈레반이 카불에 진입한 15일(현지시간) 카타르로 일시 철수했다가 작전 수행을 위해 1주일 만인 22일 카불 공항으로 돌아왔다. 아프간인과 함께 귀국한 김 참사관은 27일 외교부 기자단과의 화상인터뷰에서 긴박했던 이송 작전의 뒷얘기를 전했다.
그는 "카불 공항 진입문 바로 앞에서 협력자들을 태운 버스가 탈레반의 저지로 들어오지 못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버스가 당초 24일 오후 3시 30분 공항 안으로 들어오기로 돼 있었는데, 탈레반이 이를 막아서면서 (아프간인들이) 15시간 정도 버스에 갇혀 있어야 했다"고 전했다.
카불 공항은 미군 관리 지역이었지만, 공항 바깥은 탈레반이 장악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김 참사관은 "협력자들은 에어컨도 없고 밖을 볼 수 없도록 창문이 검게 칠해진 버스 안에서 '어쩌면 공항으로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공항 입구 바로 안쪽에서 대기했던 김 참사관도 이들을 기다리며 밤을 꼬박 새워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25일 카불공항으로 진입한 버스를 맞게 된 김 참사관은 옛 동료들과 부둥켜 안았다. 김 참사관은 "(포옹했던 아프간인은) 대사관 정무과에서 행정직원으로 함께 일했던 친구"라며 "(버스에서 내린 그가) 얼굴이 많이 상해 있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버스 안을 검문하는 과정에서 구타도 당했던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대사관에서 철수할 당시 현지인 동료들에게 "돌아오겠다. (구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는 그는 약속을 지킨 것에 안도한 모습이었다. 협력자 구출의 가장 큰 고비를 넘어선 당시 순간을 보여준 사진은 미라클 작전의 '상징'처럼 회자되고 있다.
우리 작전팀은 지난 23일부터 이슬람국가(IS) 세력의 카불 공항에 대한 자살폭탄 테러 가능성에 대한 '첩보'를 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력자들이 모두 카불을 떠난 후인 26일 카불 공항 입구 중 하나인 애비게이트에서 IS에 의한 폭탄테러가 발생해 100여 명이 사망했다. '버스 진입'에 앞서 23일 걸어서 공항에 들어온 협력자 26명이 이용한 입구였다. 협력자들의 공항 진입이 지체됐더라면 이들의 한국행이 무산될 수도 있었다.
김 참사관은 작전을 무사히 마친 소감을 묻자, "되든 안 되든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며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하는 일을 우리도 해냈다는 점에서 한국도 선진국으로서의 국격을 보여준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아울러 아프간인 동료들의 정착 문제에 국민과 언론이 도와줄 것을 당부했다. 임시수용시설이 마련된 충북 진천군민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가족들은 김 참사관이 뉴스에 등장할 때까지 카타르에 머물고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부인과 사별한 그는 대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두고 있는데, 걱정할까봐 카불에 다시 들어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어제 (한국에) 와서 통화했더니 (뉴스를 보고) '아빠 카불 다녀왔느냐'고 하더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