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재점령한 아프가니스탄에서 향후 마약 생산량이 더욱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제사회의 원조 중단으로 자금줄이 막히면서 탈레반이 통치 자금 마련을 위해 마약 거래를 사실상 방조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아랍권 매체인 알자지라방송은 24일(현지시간) 탈레반이 세계 최대 아편(헤로인) 생산국인 아프간을 장악함에 따라, 국제사회에 더 많은 마약이 공급될지 모른다고 전했다. 앞서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이 지난 17일 "앞으로 어떠한 마약도 생산·거래하지 않을 것이며, 아프간은 마약 없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탈레반의 이 같은 약속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간 조직 운영 자금 대부분을 마약 생산 및 거래에 따른 수익으로 충당해 온 탈레반이 과연 하루아침에 이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다. 일각에선 탈레반이 국제사회에서 ‘정상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마약 단속을 어느 정도 강화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지만, 핵심 수입원을 완전히 근절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 아프간에서 아편 재배는 약 12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국가 최대의 고용 원천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2019년 보고서에서 "아프간의 수출용 아편 관련 경제활동의 가치는 최대 20억 달러(2조3,000억 원)에 이르며, 이는 아프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1%"라고 밝힌 바 있다.
아프간의 아편 관련 서적을 집필했던 데이비드 맨스필드 해외개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그동안 아편과 필로폰 생산 지역 대부분이 탈레반의 암묵적 통제하에 있었다"며 "마약 생산·수출 금지 조치는 경제 붕괴나 마약 생산량 폭증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제재로 아프간 국가경제가 위기에 봉착할 경우, 마약 밀매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아프간산 헤로인은 유럽 마약 시장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알자지라는 "아프간이 전 세계 아편의 80%를 공급하고 있고, 아프간산 헤로인은 터키 등을 거쳐 유럽으로 밀반입되는 상황"이라며 "아프간 경제 악화로 마약 생산량이 늘어나면 유럽도 그 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