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전 조기 폐쇄를 둘러싸고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실무진 등이 "못 해 먹겠다"며 수차례 반발했음에도 청와대가 집요한 압박을 통해 조기 폐쇄를 밀어붙인 과정이 검찰 공소장에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24일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청와대 등의 조직적 범행"을 강조하는 한편, 백 전 장관 추가 기소 의지까지 드러냈다.
강창호 한수원 새울원자력본부 새울1발전소 노조위원장 등 탈원전 반대 단체 회원들은 이날 백 전 장관 등의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대전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소장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강 위원장은 "월성 사건을 검찰 등에 고발한 뒤 한수원으로부터 불법사찰과 직위해제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소장 내용에 따르면 2017년 10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이행 방안을 검토하던 산업부 실무진들은 원전 비중을 축소하는 내용으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수정한 후, 한수원으로부터 조기 폐쇄 이행계획을 제출받고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안을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에게 보고했다.
당초 산업부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 신중한 판단과 함께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보고했지만,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장기간이 소요된다"며 반대하자 한수원의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차선책을 내놓았다.
공소장에는 채 전 비서관이 에너지기본계획부터 수정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시간 지연을 이유로 반대하자, 산업부 실무진들이 "못 해 먹겠다" "절차를 지켜 추진하는 게 좋겠다"며 반발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채 전 비서관은 그럼에도 "수정하겠다고 말하려면 청와대에 오지 말라"며 강하게 질책했고, 결국 실무진 의견은 묵살됐다.
백운규 전 장관 등은 이후 한수원에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및 신규 원전 백지화' 문구가 기재된 '설비현황 조사표'를 작성하도록 한 뒤 곧바로 조기 폐쇄 결정을 유도하기로 결정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이 과정에서 한수원과 청와대 및 산업부 윗선 사이의 의견 충돌이 있었다. 한수원이 "설비현황 조사표엔 사실관계만 쓸 수 있다"며 반발하자, 산업부에선 인사상 불이익을 줄 듯한 태도로 이관섭 당시 한수원 사장 등을 압박했다. 한수원 간부는 그러자 실무진에게 "계속 출근하면 이 업무에 대해 지시받을 수밖에 없으니 업무 하기 싫으면 휴가를 가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4월 청와대 내부 보고시스템에 '월성 1호기 외벽에 철근이 노출돼 정비를 연장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확인한 뒤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가요'라고 댓글을 달자, 조기 폐쇄 압박은 더욱 커졌다. 채 전 비서관 지시를 받고 산업부 담당자와 통화한 청와대 행정관에게 산업부 담당자가 "모든 게 합법적 범위 내에서 가야 되는 거라 (즉시 가동 중단은) 좀 힘들다"며 난색을 표하자, 행정관은 "대통령님은 '가동 정지하기로 한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고 계시고, '산업부가 왜 안 챙기느냐' 이런 느낌을 갖고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산업부 실무진의 우려가 이어졌지만, 청와대는 이를 묵살했고 결국 그해 6월 한수원 이사회 의결로 즉시 가동 중단이 결정됐다는 게 검찰 공소장 내용이다.
피고인 측 변호인들은 그러나 이날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이 공소장에 피의사실과 무관한 내용까지 기재했다며 반발했다. 정 사장 변호인은 "공소장에 저희가 동의 여부 의견을 밝히지도 않은 (참고인) 진술이 나열돼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검찰은 "(조기 폐쇄 결정은) 청와대, 산업부, 한수원 고위 관계자의 조직적 범죄 의사에 의한 것"이라며 "최소한의 사실 관계만을 추리고 추려 공소장을 작성했다"고 맞섰다. 대검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불기소 권고가 나온 백 전 장관 배임교사 혐의와 관련해서도 "권고를 존중하지만 (여전히) 백 전 장관 혐의가 인정된다는 입장"이라며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