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탈레반, 아프간 북부 3곳 재탈환… “포용 정부 구성 안 하면 봉기”

입력
2021.08.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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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카불 점령 6일 만... 첫 무력 충돌
북부 판지시르,  반탈레반 세력 결집 거점
"국제사회 지원 없이 탈레반에 저항 역부족"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에 맞서고 있는 반(反)탈레반 세력이 21일(현지시간) 아프간 북부 지역 3곳을 다시 탈환했다. 탈레반의 아프간 수도 카불 점령 6일 만에 기존 정부를 지지하는 반군 세력이 탈레반과의 첫 무력 충돌에서 거둔 ‘작은 승리’다. 탈레반의 재집권이 아프간 사회의 안정보다는 또 다른 내전과 혼돈으로 이어질 것임을 보여 준 신호이기도 하다.

이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아프간 카불에서 북쪽으로 160㎞가량 떨어진 바글란주(州)의 풀리 히사르, 디 살라, 바노 등 3곳에서 탈레반과 반탈레반 세력 간 교전이 벌어졌다. 탈레반에 저항해 온 무장 세력은 탈레반 병사 30명을 사살하고, 20명을 생포했다고 주장했다. 지역 경찰서장 등이 포함된 반탈레반 세력은 실제 지역 관공서에 게양된 탈레반을 상징하는 흰 깃발을 내리고 다시 아프간 정부 국기를 내걸었다.

탈레반 저항 세력에 합류한 비스밀라 칸 모함마디 아프간 국방장관은 이날 트위터에 “바글란주 3개 구역을 탈환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트위터의 친탈레반 계정에도 “탈레반이 지역 주민들에게 사면을 제안했지만 배신당했다”라며 “이번 충돌로 15명의 대원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날 양측 간 교전이 발생한 곳은 아프간 전체 34주 가운데 탈레반이 아직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북부의 판지시르주의 인근 지역이다. 다만 판지시르주에서 탈레반에 대항하고 있는 ‘아프간 민족저항전선(National Resistance Front·NRF)’은 현재로선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NRF는 아프간의 ‘국민 영웅’으로 불리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 전 국방장관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가 이끄는 단체다.

마수드 전 장관은 1980년대 구소련의 아프간 침공 시 무장게릴라 조직 ‘무자헤딘’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소년 철수(89년) 이후 아프간 이슬람연방공화국의 국방장관을 맡았고, 96년 탈레반 집권 이후에도 저항세력으로 활동했으나 2001년 9월 탈레반 사주를 받은 알카에다에 의해 암살됐다. 그의 아들이자 현재 NRF 지도자인 마수드는 19일 WP 기고문에서 “나는 판지시르 계곡에서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를 것”이라며 “탈레반과 싸울 준비가 된 무자헤딘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 이번 충돌과는 관계없다 해도 향후 반탈레반 투쟁은 NRF가 주도할 공산이 크다. NRF는 기존 정부군과 지역 군대 등 약 7,000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모함마디 장관에 이어 암룰라 살레 아프간 부통령도 NRF에 몸을 담았다. 살레 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북쪽의 전사들이 하나의 지휘 체계 아래에서 움직일 것이며, 탈레반에 대한 저항도 커질 것”이라면서 결집을 호소했다.

문제는 대(對)탈레반 무력 투쟁이 이미 ‘탈레반의 완승’으로 끝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느냐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충돌을 비롯, 아프간 내 지역 지도자들이 NRF를 중심으로 뭉쳐 탈레반에 대항하는 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탈레반의 병력이 수적으론 훨씬 많지만 아프간 전역에 흩어져 있는 데다, 탈레반을 합법정부로 인정하지 않는 국제사회가 이들을 물밑 지원할 경우 승산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이 자국민 철수 등 아프간에서 발을 빼는 상황에서 미군의 최신 무기를 확보해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화력을 지니게 된 탈레반에 정면 대응하는 건 역부족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탈레반의 새 정부 구성이 임박한 가운데 반탈레반 세력은 ‘포용적 정부를 꾸리지 않으면 지역 거점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들 마수드는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평화적으로 포용적 정부를 구성하는 데 합의하지 않는다면 판지시르뿐 아니라 아프간 여성들과 젊은 세대, 시민사회 등 모든 아프간인들이 봉기할 것”이라며 “무력으로 대통령궁을 정복했다고 해서 국민의 마음과 정신을 정복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강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