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융업에 종사하다 몇 해 전 은퇴한 김모(62)씨가 생애 첫 아파트를 마련한 건 1997년이다. 당시 구입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전용면적 135㎡ 아파트 가격은 3억6,000만 원. 은행 대출과 부모의 도움을 받았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임대수익을 위해 서울 시내 상가를 분양 받았고, 투자 목적으로 인천에 아파트 한 채를 더 마련했다. 자가였던 대치동 아파트는 20년새 10배 가까이 올랐다. 김씨는 인천 아파트를 팔아 3년 전 아들이 서울 성동구에 신혼집을 사는데 수억 원을 보탰다. 김씨 부자가 보유한 부동산 자산만 약 50억 원. 부동산 자산을 따졌을 때 대한민국에서 상위 2%에 포함된다.
#2. 2015년 남편과 사별 후 한 사립대학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이모(61)씨의 첫 자가는 1995년 구입한 서울 관악구의 전용면적 84㎡ 아파트였다. 평탄했던 이씨의 삶은 남편의 사업 실패로 부침을 겪었다. 아파트는 채무 변제를 위해 대출금을 다 갚기도 전 처분했다. 이후 전세를 전전하고 있다.
현재 이씨는 서울 금천구의 전세보증금 1억2,500만 원짜리 투 룸 빌라에서 딸과 함께 산다. 얼마 전 결혼하는 아들의 전세 자금으로 그동안 모은 8,000만 원을 내준 탓에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다. 이씨는 딸 결혼 자금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룬다. 이씨가 보유한 부동산 자산 규모는 '0원', 하위 30%에 속한다.
부동산 자산 기준 상위 2%와 하위 30%의 삶은 이처럼 천양지차다. '부동산 부자'들의 자산은 계속 불어나고 그 자산을 바탕으로 임대소득을 올린다. 자녀 교육에도 투자해 대를 이어 부동산 부자가 되는 길을 열어주지만 하위 30%의 삶은 이와 정반대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한 집값 상승으로 상위 2%의 자산 집중도는 더욱 심화됐다. 상위 2%의 부동산 자산이 3년간 5억 원 증가할 때 하위 30%는 늘기는커녕 '제로(0)'로 떨어졌다. 부동산으로 신분이 정해지고 자녀에게 세습되는 '신(新)계급 사회'. 부동산 양극화가 인도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민간 연구기관 LAB2050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한국의 부동산 부자들:부동산 계층 DB로 본 계층별 사회경제적 특성)에 따르면 상위 2% 부동산 부자는 '수도권 40평 이상 자가 아파트에 거주하며 연평균 1억 원을 버는 대졸 이상 학력의 60대 남성'으로 정의된다.
LAB2050은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 원본 데이터를 토대로 부동산 자산을 따져 계층을 나눈 뒤 각각의 특징을 분석했다. 이에 따라 설정한 상위 2% 가구의 평균 부동산 자산은 지난해 3월 기준 30억7,600만 원이다. 이들의 부동산 자산을 모두 합하면 전체 가구가 소유한 자산의 19.25%에 해당한다. 2017년 18.16%에서 3년새 1%포인트 이상 늘었고 집값이 급등한 올해는 상위 2%의 자산 비중이 더 높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부동산 하위 30%는 '지방 15~26평 아파트에 월세로 거주하며 연평균 3,700만 원을 버는 고졸 60대 남성'으로 요약된다. 모든 지표에서 부동산 부자들과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다. 이들의 평균 부동산 자산은 '제로'다.
부동산 부자들은 80%가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거주하고 학력도 높다. 상위 2% 가운데 대학원 출신은 27%, 4년제 대학 졸업이 41%다. 고등학교 졸업이 과반인 하위 30%와 대조적이다.
상위 2%와 하위 30% 가구의 부동산 자산 격차는 최근 몇 년간 급격히 벌어졌다. 상위 2%의 평균 부동산 자산은 2017년 25억2,100만 원에서 3년 만에 5억5,500만 원(22%) 늘었다. 집값 상승의 영향이다. 반면 중산층에 해당하는 부동산 자산 기준 30~70% 가구는 이 기간 1억5,900만 원에서 1억6,100만 원으로 불과 200만 원(1.26%) 증가에 그쳤다. 심지어 하위 30%는 900만 원이었던 평균 자산이 0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전체 가구 평균 부동산 자산은 2017년 2억7,800만 원에서 지난해 3억2,000만 원으로 15% 증가했는데, 상승분의 대부분을 상위 계층이 독식했다는 의미다. 게다가 LAB2050는 지난해 3월 말 부동산 자산과 2019년 가구별 소득 및 지출 등을 기준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등한 집값을 감안하면 올해 데이터로 분석할 경우 자산 격차가 더 커지게 된다.
부동산 불평등이 심화하는 흔적은 다른 지표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국토연구원의 주거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하위가구(월 소득 250만 원 이하)의 자가보유율은 2014년 50%에서 지난해 46.9%로 떨어졌다. 이와 달리 상위가구(월 소득 500만 원 이상)는 77.7%에서 80.2%로 상승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소득 대비 집값과 임대료가 모두 크게 올라 무주택자의 부담은 더욱 늘었다"며 "집 없는 이들의 설움이 그만큼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자산 상위 2%와 하위 30%의 차이는 소득 구조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2019년 부동산 상위 2%의 연평균 근로소득은 3,373만 원으로 전체 소득(9,422만 원)의 35.7%를 차지했다. 상위 2~5%의 근로소득(3,604만 원)보다 오히려 적다. 전체 소득을 좌우한 건 부동산에서 나오는 '임대소득'이다. 상위 2%의 평균 임대소득은 2,035만 원으로 하위 30%의 4만 원보다 508배 많다.
전강수 대구카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은 임대소득과 자본소득 두 가지인데, 임대소득과 달리 자본소득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며 "실제 부동산으로 인한 소득 불평등 정도는 더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득 격차는 교육 수준의 격차로 이어져 50대 가구주가 대학원 졸업 학력인 가정은 연 1,351만 원을 자녀 교육비로 지출했는데, 가구주가 고등학교 졸업인 경우 3분의 1 수준인 436만 원이었다. '땅부자'가 엘리트가 되기 유리한 셈이다.
LAB2050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학원 출신 가구주 중 61%, 4년제 대학 졸업 가구주 중 52%가 부동산 자산을 늘렸다. 3년제 이하 대학 출신은 44%, 고등학교 졸업은 40%, 중학교 졸업은 33%만 부동산 자산을 늘렸다. 이원재 LAB2050 대표는 "과거에는 부동산과 교육이 계층 상승의 도구로 중산층 형성에 도움이 됐다"면서 "이제는 반대로 부동산이 없으면 자녀 교육을 잘 시킬 수 없고 교육을 받지 못해 부동산 구매가 어려워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대물림 현상을 보여주는 지표는 20대의 계층별 부동산 보유액이다. 모든 연령대 중 20대에서 부동산 자산 상위와 하위 간 격차가 가장 컸다. 지난해 기준 20대 가구주 중 상위 2%는 전체 20대가 보유한 부동산 자산의 41.17%를 소유했다. 반면 하위 30%의 부동산 자산은 0%에 수렴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례없는 자산 가격 폭등으로 역사상 가장 경제적으로 취약한 세대가 한국의 20대"라며 "각자의 분야에서 역량을 펼쳐야 할 시기에 노동가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내 집 마련을 꿈도 꿀 수 없는 젊은이들로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