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직설적이다. 우격다짐은 아니다. 이야기 구성과 전개에 군더더기가 없다. 상영시간 94분 내내 오로지 재미라는 목표를 향해 내달린다. 18일 개봉한 한국 영화 ‘인질’은 서스펜스와 차가운 유머라는 즐거움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한다.
내용은 현실과 허구를 오간다. 실제 황정민이 출연해 유명 영화배우 황정민을 연기한다. 신작 개봉을 앞둔 황정민이 집 앞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되면서 이야기는 출발선에 선다. 납치범들은 광적인 팬들도, 급진적 정치세력도 아니다. 그저 몸값만 노리고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납치해 왔다. 이들에게 황정민과의 우연한 조우는 로또 당첨이나 마찬가지다.
납치범들은 교활하고 폭력적이며 예측불허다. 특히 리더 최기완(김재범)은 영리한 데다 잔혹하고 치밀하면서도 대범하다. 그는 사제총 제작과 폭파 기술까지 지녔다. 납치범 중엔 다혈질이거나 어눌한 인물이 있어 틈이 없지는 않으나 피해자가 빠져나가기는 어렵다. 황정민의 무기는 그가 누구보다 잘한다고 자신할 수 있는 연기다. 황정민은 협박과 조소와 폭력을 견뎌가며 사지에서 벗어날 궁리를 한다.
이야기의 전반부는 황정민이라는 유명 배우를 영리하게 활용한다. 납치범들은 황정민을 비밀 아지트로 끌고 오고선 신기해 한다. 납치범 중 황정민 팬이 있어 영화 ‘신세계’의 유명 대사 ‘드루와, 드르와’를 시연해달라고 조르거나,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도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팬과 스타로 순간 변모하면서 웃음을 자아내나 역설적으로 싸늘한 기운을 뿜어낸다. 황정민이라는 실제 인물을 스크린으로 끌어왔기에 효과는 더 강력하다. 황정민이 어떤 연기력으로 납치범들을 속일지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연기 잘한다는 황정민에게 납치범들은 정말 속아 넘어갈지, 그렇다면 그 연기는 또 어떤 사실성을 띨지 호기심을 만들어낸다. 심장병이 있는 황정민이 약을 복용하지 못하면서 바지에 오줌을 지리기까지 하는데, 진짜인지 연기인지 가늠키 어려워 납치범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식이다.
후반부는 반전의 재미에 집중한다. 황정민이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난 듯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생각지도 않은 난관이 이어진다. 긴장감 넘치는 차량 추격 장면(매끈하게 잘 만들어졌는데 단 하루 촬영만으로 완성했다고 한다)이 펼쳐지고 그럴 듯한 반전이 몇 번 거듭되면서 관객은 스릴을 즐기게 된다.
캐스팅의 힘을 무시하지 못할 영화다. 유명 배우 황정민에 맞서는 배우들은 대체로 낯설다. 황정민이 참여한 오디션을 통해 뽑힌 배우들이다. 지난해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로 얼굴을 알린 류경수 등이 생경한 면모로 스릴을 더한다. 특히 김재범을 주목할 만하다. 뮤지컬과 연극 등에 출연하며 17년 동안 주로 무대에서 연기력을 다진 배우다. 황정민의 기에 눌리지 않고, 현실에선 마주하고 싶지 않을 냉혈한의 모습을 구현해낸다.
‘인질’은 상영 첫날인 18일부터 흥행 파란을 일으켰다. 9만7,226명을 모으며 여름 극장가 2강으로 분류됐던 ‘싱크홀’(5만9,334명)과 ‘모가디슈’(3만5,895명)를 제치고 일일 흥행순위 1위에 올랐다. ‘인질’은 순제작비(마케팅 비용 등 제외)가 57억 원으로 ‘모가디슈’(순제작비 약 220억 원)와 ‘싱크홀’(약 110억 원)에 비해 덩치가 작다. 첫날 성적표는 흥행몰이의 청신호라 할 수 있다.
필감성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충무로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활동하며 쌓은 현장 감각이 영화 완성도에 기여한다.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