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내년 대선 후보 선출일(민주당 10월 10일, 국민의힘 11월 9일)이 50일 넘게 남았지만 양당에선 벌써 '경선 불복'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민주당은 이낙연 캠프 측 발언으로 후보들 사이에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경선 불복론이 터졌고,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갈등으로 '심리적 경선 불복 가능성'이 제기됐는데요.
여야의 지지 세력이 총결집해 진검 승부를 벌이는 대선에서 경선 불복은 필패로 갈 수밖에 없는데요. 경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측은 진영의 '배신자'로 낙인찍히죠. 한편으론 우위에 선 후보와 지도부를 압박할 수 있는 회심의 일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 벼랑 끝 전술이기 때문에 자칫 자살골일 수도 있습니다. 후보 선출일이 다가올수록 이 같은 신경전은 치열해 질 수밖에 없죠.
민주당의 경선 불복론은 이낙연 캠프가 '이재명 후보 선출 시 역선택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나왔는데요. 이낙연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인 설훈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만일 이재명 후보가 본선 후보가 되면 (민주당이 원팀이 될지) 장담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경우 이 전 대표 지지자들의 32%가 이 지사가 아닌 다른 후보를 선택하겠다고 한 여론조사 결과를 설명하면서 나온 발언입니다.
또 다른 민주당 대선주자인 김두관 의원은 '경선 불복론'을 제기한 것이라고 비판했고, 이재명 캠프 선대위원장인 우원식 의원은 "정권 재창출이 염원인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을 불안하게 만든 발언"이라고 반발했죠.
그러자 이낙연 캠프는 여론조사 결과를 말했을 뿐이라며 경선 불복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정치적 공세를 펴고 있다며 이 지사 측과 김 의원 측을 비판했습니다. 다른 공방 이슈로 경선 불복론은 잠시 수그러들었지만, 주자들이 오해를 푼 건 아니기에 논란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와 윤 전 총장 측의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가면서 경선 불복론이 튀어나왔습니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윤 전 총장은 금방 정리된다'고 한 이 대표와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말이죠. 이 대표는 정리된다는 건 윤 전 총장이 아닌 경선 일정 논란을 말한 것이라며 원 전 지사가 사실을 왜곡했다고 반박했습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에 이 대표가 경선 관리를 공정하게 하지 않고 있다며 "후보를 선출해도 우리 당의 지지자들이 완벽하게 일치단결해 그 선출된 후보를 지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심리적 경선 불복이 생긴다"고 비판했습니다. 김 최고위원은 이 대표와 대립하면서 윤 전 총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대선을 혼란과 정쟁에 빠트리는 경선 불복론은 대통령 선거가 직선제로 바뀌면서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자주 일어났습니다. 경선 불복을 법으로 금지한 2005년 이후 파급력은 약해졌지만, 여전히 주요 선거를 복잡하게 만드는 주요 변수죠.
역대 대선 중 경선 불복론이 태풍급 변수가 된 건 1997년 제15대 대선이었습니다. 당시 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선 직전 한나라당으로 변경) 소속이었던 이인제 전 의원은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에게 패했지만,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탈당했습니다. 이 전 의원은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했죠.
이 전 의원의 출마로 '김대중-이회창' 양자 대결이 될 것 같았던 대선 구도는 완전히 뒤바뀝니다. 이 전 의원은 당시 득표율로 3위를 했는데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 득표율 40.27%, 이회창 후보 38.74%, 이인제 후보 19.2%였습니다. 보수진영에선 이를 두고 보수 표가 이회창-이인제 두 후보로 분산됐다며 이 전 의원에게 책임론이 쏟아냈죠.
5년 뒤 16대 대선은 경선 불복을 연상시키는 사건이 두 번이나 터진 파란만장한 선거였습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5년 전 대선판을 요동치게 한 장본인인 이 전 의원입니다. 5년 뒤에도 경선 불복으로 비칠 수 있는 정치 행보를 한 건데요.
국민신당 실패 후 민주진영인 새천년민주당으로 이적한 이 전 의원은 16대 대선에 다시 도전합니다. 대선 초기만 해도 '이인제 대세론'으로 압승이 점쳐졌죠.
하지만 이때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가 주도한 '노무현 신드롬'이 불어닥쳤죠. 신드롬으로 여론의 중심에 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파란을 일으키며 경선 중반 이 전 의원을 따돌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이 전 의원은 경선 승리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중도에 경선을 포기하고 자민련으로 당적을 다시 옮깁니다.
두 번째 경선 불복의 주인공은 정몽준 전 의원입니다. 당시 2002 한일 월드컵의 인기로 노무현 신드롬, 이른바 '노풍(盧風)' 못지않게 '정몽준 열풍'도 상당했습니다. 이에 대선 구도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1강, 노무현·정몽준 2중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를 이룰 경우 이회창 후보를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속속 나오면서 양측은 단일화 협상에 나섭니다. 단일화 결과 노 전 대통령이 단일 후보가 됐고, 이에 노무현·이회창의 대결은 승리를 예측할 수 없는 초접전 승부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단일화 이후 노무현·정몽준 양측은 유세와 정권 구성, 정책 방향을 두고 자주 대립합니다. 잦은 잡음은 결국 파열음을 내는데요. 정 전 의원은 대선 하루 전날 노 전 대통령의 지지 철회를 선언합니다. 정 전 의원의 변심에 노 전 대통령 캠프는 전전긍긍했고, 이회창 측은 반사효과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의 승부수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게 이튿날 선거 결과로 드러났죠. 정 전 의원의 국민통합21 도움 없이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두 번째 민주진영 정권이 출범하게 됩니다.
1992년에도 경선 불복이 벌어졌는데요. 이종찬 전 의원은 14대 대선에서 민주자유당(민자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를 저울질했습니다. 이 전 의원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손자이자 이종걸 전 의원과 사촌입니다. 민주정의당(민정당) 사무총장을 지낼 정도로 여권의 실세 중 한 사람이었죠.
그러나 당시 민자당 대선 경선에서 대세론을 형성한 사람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이 전 의원이 밀릴 수밖에 없었는데, 경선을 앞두고 김 전 대통령과 심한 갈등을 벌였고 경선 이틀 전 '경선 포기' 선언을 하고 탈당을 준비합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나서 이 전 의원에게 해당 행위라고 비난했고, 민자당은 이 전 의원의 탈당 징계를 추진합니다. 결국 이 전 의원은 당을 나온 뒤 정주영 국민당 후보를 돕게 됩니다. 이후 3년 뒤 김대중 전 대통령, 동교동계와 손을 잡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죠.
1992년부터 2002년 대선까지 10년 동안 경선 불복이 반복되자 정치권은 '경선 불복 금지' 입법에 착수합니다. 이 입법은 1997년과 2002년 대선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데요. 두 번의 대선에 걸쳐 경선 불복한 이인제 전 의원의 이름을 따 '이인제 방지법'으로 불리기도 했죠.
정치권은 2005년 8월 경선 불복 금지를 명문화한 공직선거법을 개정합니다. '당내 경선 결과 정당 후보자로 선출되지 않은 자는 해당 선거의 같은 선거구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다'고 못을 박습니다.
그러나 법으로까지 금지한 경선 불복은 2007년 대선에서 또다시 고개를 듭니다. 경선 불복의 피해자인 이회창 전 총재가 신당을 창당해 세 번째 대선에 도전합니다. 이 전 총재는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위 의혹을 덮고 갈 수 없다는 명분으로 출마를 감행합니다.
물론 이 전 총재가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 참여한 것도 아니고, 후보로 선출된 이 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것도 아니라 경선 불복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후보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싸울 때는 가만히 있다가 보수진영 후보가 확정된 뒤 출마를 선언하고 신당을 창당한 건 사실상 경선 불복이나 다름없다며 비난을 샀습니다.
보수진영뿐 아니라 민주진영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는데요. 당시 2007년 11월 7일에 보도된 한국일보 기사를 보면,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연찬회가 이 전 총재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됐습니다.
당시 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은 "경선 불복 금지법은 이 전 총재가 1997년 대선에서 이인제 후보의 탈당으로 낙선해 만든 건데, 본인이 이를 이용해 출마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