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보다 경기를 즐긴 Z세대의 열정'에 박수만 치고 끝내기엔 뭔가 찝찝하다. 메달 지상주의에서 벗어나라고 했지만 과연 성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나. 금메달(6개)만 놓고 보면 1984년 LA 대회(금6ㆍ은6ㆍ동7)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장밋빛 미래로 가는 과도기로 치부하기엔 스포츠 강국의 위세를 잃은 허전함이 크게 밀려 온다. 도쿄올림픽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간 한국 체육의 방향성과 현실은 여전히 간극이 크다.
지금의 스포츠정책은 2010년대 중반부터 엘리트와 생활체육의 통합을 중심으로 큰 변화를 맞았다. 최근 몇 년 새 체육계 폭력ㆍ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엘리트체육의 폐해를 막고자 생활체육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 갔다. 그 때문인지 도쿄올림픽은 과거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긴 했다. 코로나19 탓도 있겠지만 온 국민이 열광하거나 집중하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가 체육 패러다임 전환 공표 이후 처음 맞은 올림픽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사이 개최국 일본의 약진은 놀라웠다. 금메달 27개 등 58개의 메달로 종합 3위, 홈 어드밴티지를 감안하더라도 1996년 애틀랜타에서 23위까지 처졌던 나라라는 게 믿기지 않는 상승세다. 중국에 이어 아시아 2인자 다툼을 벌였던 우리에게도 더 이상 라이벌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은 종목을 집중 지원했다. 'S등급'과 'A등급'으로 분류한 16개 종목에는 선수 실력 향상을 위한 예산을 30%와 20%씩 더 줬다. 일본이 이번 대회에서 따낸 메달 58개 중 47개, 금메달 27개 중 25개가 SㆍA등급 종목에서 나왔다. 이는 영국식 성과주의를 도입한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996년 애틀랜타에서 금메달 1개에 그쳤던 영국은 2012년 런던올림픽 3위, 2016년 리우올림픽 2위로 환골탈태했다. 도쿄에서도 종합 4위, 메달 숫자로는 3위의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났다.
우리도 메달 전략을 세우고 포상도 하지만 일본과의 차이는 저변이다. 일본은 20개 종목에서 메달을, 11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반면 한국은 메달 종목 8개, 금메달 종목 3개로 편식이 심했다. 일본 올림픽위원회가 공개한 일본 선수들의 소속은 은행 등 다양했는데 우리처럼 소속팀 개념이 아니라 실제 회사원으로 사회생활을 병행하는 선수들이 많다고 한다. 중ㆍ고등학생 때부터 부카츠(部活·동아리 활동)로 스포츠를 접하는 그들은 입시에 매달리는 한국과 달리 절반만 대학에 진학(2020년 대학 진학률 51.1%)한다.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운동을 이어가면서 풍부한 양적ㆍ질적 자원의 토대를 만든 게 탄탄한 일본 사회체육의 배경이다.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도 메달 색깔보다 선수들의 도전을 응원하는 문화가 정착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눈물과 웃음이 뒤섞인 스포츠가 주는 본연의 감동이 크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다만 국가경쟁력과 직결하는 엘리트체육의 퇴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 또한 확인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라는 정책의 방향성은 맞지만 공부도, 운동도 안 되는 선수 양산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생활체육 기반의 엘리트 강국. 물과 기름의 공존 같은 난제지만 영국과 일본은 해냈다. 한국 체육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