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작원 접선’ 연구원 "짜맞추기 수사" 무죄 주장

입력
2021.08.18 16:00
첫 재판서 "공소사실 인정 못 해" 부인
北 지령문 받고 북한 옹호 책 2권 출판
'일심회 사건' 때 국보법 위반 징역 3년

국내에 잠입한 북한 공작원과 수차례 접선해 국내 동향 등을 보고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민간단체 연구위원이 18일 첫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양은상 부장판사는 이날 국가보안법 위반(회합·통신 등) 혐의를 받고 있는 4ㆍ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인 이정훈(57)씨의 첫 재판을 진행했다.

이씨는 검찰의 공소사실 낭독이 끝나자 직접 발언 기회를 얻어 “공소장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증거기록 자료를 받아 본 뒤에 공안당국의 짜맞추기 수사와 증거 조작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 변호인도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피고인은 국가 존립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면서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 등 행위를 한 바 없다”고 밝혔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이씨는 2018년 10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북한 대남공작기구로부터 해외 웹하드를 통해 암호화된 지령문을 수신하고, 5차례에 걸쳐 보고문 14개를 보낸 혐의를 받는다. 일본계 페루 국적으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북한 공작원 ‘고니시’와 4차례 만나 자신의 활동 상황이나 국내 진보진영 동향 등을 보고한 혐의도 있다.

이씨는 북한 주체사상 및 세습독재, 선군정치, 핵무기 보유 등을 옹호·찬양하는 책자 2권을 출판한 혐의(국가보안법 7·8조 위반)로도 기소됐다. 이 책자는 '87년 6월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와 '북 바로알기 100문 100답'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이날 재판에서 국가정보원이 북한 공작원으로 지목한 ‘고니시’가 이미 사망한 데다, 그 신원조차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증거로 제출된 국정원 녹취록 역시 “사실 부분이 의도적으로 누락돼 여기저기 삽입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은 지난 4년간 저와 동료들을 상시 미행하고 녹취했지만, 수사 결과 국정원이 고대하던 지하 조직과 간첩 활동은 없었고 소모임 정책 토론 등 진보 활동과 합법적 통일 운동뿐이었다"고 주장했다.

국가정보원과 서울경찰청은 5월 합동 수사로 이씨를 체포해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그를 6월 말 재판에 넘겼다. 이씨는 2006년에도 ‘일심회 사건’과 관련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일심회 사건은 당시 민주노동당 중앙위원이었던 이씨 등 5명이 북한 공작원에게 남측 동향을 보고한 혐의로 적발된 사건이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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