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2의 베트남 패전' 뒷모습 우려했지만... 미군 5,000명 철수 작전

입력
2021.08.1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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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바이든, 이틀 만에 미군 1,000명 또 증원
탈레반에 경고...물밑선 권력 분점 협상 압박
아프간군 무능 오판, 탈레반 전격전 과소평가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탈레반이 무서운 기세로 수도 카불을 압박하자 미국은 막판까지 다급한 모습을 보였다. 이달 말로 철군 시한을 제시했지만 현지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15일(현지시간) 카불 주재 대사관 외교관들의 철수를 시작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4일 아프간 철수를 지원할 미군을 5,000명으로 증원했고 탈레반에 경고장도 날렸다. 제2의 베트남전쟁 패전 같은 뒷모습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미국의 누적된 오판에다 9ㆍ11 철군 일정에 집착한 바이든 대통령의 패착이 지금 같은 상황을 낳았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카불 미국인 철수 서두르며 타협도 모색

탈레반이 아프간 제4의 도시 마자르-이-샤리프를 점령하며 카불 턱 밑까지 치고 들어온 주말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휴가 중이던 바이든 대통령은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먼저 “외교ㆍ군사ㆍ정보팀 권고에 근거해 약 5,000명의 미군 배치를 승인했다”며 미국 및 다른 동맹국 요원, 미군을 도운 아프간인 철수 지원을 배치 목적으로 제시했다. 12일 3,000명의 미군 배치를 명령한 데 이어 이틀 만에 1,000명을 추가, 기존 경비병력 1,000명 포함 총 5,000명이 철수 작전을 지원키로 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해진 것이다.

미 CBS방송은 향후 36시간 내에 소수 핵심 인력을 제외하고 아프간 주재 미국대사관 직원 대피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카불에서는 기밀자료와 민감한 자료 폐기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탈레반에 대해서는 강온 양면 카드를 모두 내밀었다. 그는 성명에서 “미국 요원과 임무를 위험에 빠트리는 어떤 행동도 신속하고 강력한 군사 대응에 직면할 것임을 (카타르) 도하의 탈레반 대표들에게 전달했다”라고 설명했다. 철수 작전을 하는 미군에게 직접 공격을 가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8월 말 미군 완전 철수 전 카불 대사관이 위협받을 가능성을 감안해 병력이 조금 더 오래 주둔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타협도 모색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날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과 통화하며 지원을 약속했다. 물밑에서는 탈레반과의 권력 분점, 평화협상도 압박하는 분위기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다른 나라 내전 중 미국의 끝없는 주둔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아프간 정부군이 자신의 나라를 지킬 수 없다면 미군이 1년 또는 5년을 더 주둔해도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완전 철군 기조 자체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트럼프ㆍ바이든 조기 철군 고집도 문제

미 정보당국은 6월 말까지만 해도 카불 함락 시점을 미군 완전 철수 후 18개월 정도로 예상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3개월, 1개월 이내에 아프간 정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비관론이 대두하는 상황이다.

결국 미국의 그릇된 판단 누적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대통령의 최고위 참모들은 카불을 위협하는 탈레반의 공격적이고 계획된 공세에 직면한 아프간군의 급속한 붕괴에 망연자실했다”라고 전했다. 830억 달러(약 97조 원)를 들여 20년간 아프간 보안군을 훈련시키고 장비를 현대화시켰지만 부패와 분열 등으로 아프간군은 괴멸 중이다. 반면 탈레반의 전력과 전략은 과소평가한 측면이 컸다.

2001년 아프간 침공 자체, 2011년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 사살 목적 달성 후 발을 빼지 못한 우유부단함 등 패착도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급한 철군 결정, ‘9ㆍ11 테러 20주년 전 아프간 완전 철군’ 일정에 집착한 바이든 대통령의 판단도 문제였다.

NYT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국방부가 계속해서 소규모 대테러부대나 최대 4,500명의 미군 계속 주둔을 요구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7월 초 바그람 공군기지 철수 등 미군이 줄어드는 시점에 맞춘 탈레반의 총공세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한 군사전략 오판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