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칙령41호의 '석도'는 '관음도'가 아니다

입력
2021.08.07 10:50

칙령41호는 국제법적으로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자료이다. 1900년 대한제국은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고대 이래 고유영토로서 관리되어온 대한제국의 영토로서 영토적 권원을 갖고 있는 동해에 위치한 2섬 우산도와 울릉도를 근대국제법에 의거하여 '군(울도군)'을 설치하는 행정조치를 단행했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보이는 거리에 있지만 사람이 살 수 없는 암초로 된 무인도이었기 때문에 삼국사기에 특기할 정도로 테마가 있는 섬은 아니었다. 울릉도에는 여진족(1018년)과 왜구(1379년)가 왕래하는 일이 생기면서 영토를 수호하는 차원에서 울릉도와 더불어 독도도 관리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독도가 '우산도'라고 불리었는데, 한국측 관찬사료인 신찬팔도지리지(1432년), 고려사지리지(1451년), 세종실록지리지(1454), 동국여지승람(1481),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 동국문헌비고(1770년), 만기요람(1809년) 등에서는 "울릉도와 우산도는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의 영토이고, 우산도는 일본이 말하는 송도(독도)이다"라는 식으로 동해에 울릉도와 우산도 2섬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기인 일본의 에도시대에는 독도를 '송도(松島)'라고 불렀는데, 일본측 관찬사료인 은주시청합기(隠州視聴合紀·1667년), 돗토리번(鳥取藩)답변서(1695년), 1696년의 울릉도도해금지령, 1737년의 울릉도도해금지령, 태정관지령(1877년), 기죽도(울릉도)약도(1877년) 등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영토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처럼 조선은 물론이고 일본의 에도시대, 메이지시대에도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고유영토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은 무력으로 강화도사건을 일으키고 이를 빌미로 1876년 강화도조약을 강요하여 부산, 인천, 원산항을 개방시키고 적극적으로 조선근해에 진출했다. 그 때에 울릉도는 비워져 있었고 독도는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무인도였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불법적으로 독도를 거쳐 울릉도에 들어와 거주하기 시작했다. 대한제국정부가 이런 사실을 알고 1882년 이규원 검찰사를 울릉도에 파견하여 일본인 78명(조선인 170명)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한제국정부가 부산 일본영사관 요청하여 일본인 등의 쇄환을 요구했지만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한제국은 1900년 '칙령41호'로 '울도군'을 설치하고 "울릉전도(鬱陵全島),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구역으로 정하고 관보에 게재하여 국내외에 알렸다. 그래서 칙령41호는 한국이 울릉도와 독도를 영토로서 관할 통치했다는 증거로서 국제법에 의거한 실효적 지배에 해당되는 조치이다.

1900년 시점에서 대한제국정부는 동해상에 울릉도와 독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관찬문헌 기록으로 보면, 한국측 고문헌에는 동해에 "우산도와 울릉도", "울릉도와 우산도", "울릉도와 자산도", "천산도와 울릉도(완산도, 범산도)"라고 표기되었고, 일본측 고문헌에는 "죽도와 송도", "송도와 리앙쿠르도", "울릉도와 양코도", "송도와 양코도", "죽도 외1도" 등 2개의 섬으로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2섬이 명확히 한국영토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칙령41호에 의한 '울도군'의 관할 구역으로 지정된 "울릉전도, 죽도, 석도"라는 명칭들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섬을 가리키는지를 검증해보기로 한다.

첫째, '울도군'에서 '울도(鬱島)'라는 명칭이다. 왜 '울릉군'이라고 하지 않고 '울도군'이라고 명명했을까? 한국측의 고문헌과 고지도에는 동해상에 울릉도와 우산도 2섬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다. 신찬팔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문헌비고 등에서는 우산도가 지금의 독도를 가리킨다. 그런데, 1711년 수토사 박석창이 잘못 표기한 수토보고서 '울릉도도형(圖形)'을 모방한 지도들은 울릉도에서 2km지점에 위치한 지금의 죽도(댓섬)를 우산도로 표기했다. 이처럼 여러 고문헌과 고지도에서 울릉도와 별도로 지금의 죽도와 독도에 대해 우산도라고 표기한 기록이 존재하기 때문에 '울릉군'이라고 명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울도(鬱島)군'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창조했던 것이다.

둘째, '울릉전도'라는 명칭이다. 그냥 울릉도라고 하지 않고, '울릉전도'라고 표기했다. '울릉전도'는 울릉도의 모든 섬을 의미한다. '울릉전도'라는 이름을 가진 개별적인 섬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복수의 섬을 말한다. 울릉도 본섬 주변에는 암석을 포함해서 흙이 있고 나무가 자라는 섬은 '관음도'와 '죽도' 단2개뿐이다. 관할구역에 '죽도'라는 명칭은 별도로 나열되어있다. 그렇다면 위치나 크기 상으로 보더라도 관음도는 울릉본섬에서 불과 140m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울릉전도'에는 울릉본섬과 관음도가 포함되어 있음에 분명하다. 현재는 서로 현수교로 연결되어있다. '관음도'라는 명칭은 불교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일제시대에 만들은 것이고, 이규원 검찰사가 조사한 '울릉외도'에는 '도항'으로 표기되어 있다.

셋째, '죽도'라는 명칭이다. 일반적으로 '울릉전도'라고 하면 울릉도 주변에 있는 모든 섬을 말하는데, 관할구역에 '울릉전도'와 별도로 '죽도'를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산도'라는 명칭 때문이다. 우산도는 원래 조선시대에 독도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는데, 잘못된 수토사들의 보고서를 베낀 일부의 고지도와 고문헌에서 현재의 죽도를 '우산도'로 표기하여 명칭의 혼란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산도'라는 명칭은 명칭의 혼란을 없애기 위해 칙령41호에서는 완전히 제외되었다. '죽도'라는 명칭은 이규원 검찰사가 조사한 ‘울릉외도’에 표기된 것이다. 이를 보면 칙령41호에서 사용된 명칭이 '울릉외도'를 참고한 것임에 분명하다.

넷째, '석도'라는 명칭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울릉전도'와 '죽도'를 제외하면 석도는 독도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울도군을 설치한 근본적인 목적이 동해상의 도서인 울릉도와 독도 2섬을 관할통치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명칭이었던 '우산도'라는 명칭은 고지도상 죽도를 가리키는 우산도와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칙령에 사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왜 '석도'라고 했을까? 1904년 일본군함 니이타카(新高)호가 울릉도와 독도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군함일지에 "울릉도에서는 독도(獨島)라고 기록한다"고 기록했다. 또한 1906년 심흥택군수는 울릉도를 방문한 시마네현 관리들로부터 전해 듣고, '본군 소속 독도(獨島)가 일본에 의해 침탈당했다’고 중앙정부에 보고했다. 이를 보면, 니이타카호가 울릉군청에 기록된 '독도(獨島)'의 명칭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울릉군청에서는 이미 4년 전인 1900년의 칙령이전부터 '돌섬'이라는 의미로 이주민의 80%를 차지하는 전라도 사투리로 '독섬'이라고 불렀고, 이를 문헌기록상 한자로 '독도(獨島)'라고 표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1900년의 칙령에서는 중앙정부가 '돌섬'의 의미로 전라도방언이 아닌 표준말로 문헌기록상 한자어로 '석도(石島)'라고 표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합리적인 논증 없이 그냥 '석도'는 독도가 아니고 '관음도'라고 우긴다. 왜냐하면 석도가 독도라고 인정해버리면 일본은 더 이상 독도의 영유권 주장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논증했듯이 석도는 절대로 관음도가 될 수 없다. 1899년 일본과 한국 그리고 부산세관 프랑스인 라뽀테가 참여한 울릉도 국제합동조사단이 울릉도에 거주중인 일본인들의 실태를 조사하였다. 칙령 발령 바로 1년 전의 조사에서 울릉도 주변에 '죽도, 도항(관음도)'이라는 섬의 존재를 명확히 했다. 만일 칙령41호에서 울도군의 관할구역에 석도(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다면 '울릉전도, 도항(관음도), 죽도'라고 했을 것이다.

요컨대 대한제국정부는 동해상의 2섬인 울릉도와 독도를 영토로서 관할통치하기 위해 칙령41호로 울도군의 행정구역에 명시적으로 "울릉전도, 죽도, 석도"라고 3섬을 나열하였다. 첫째, '울릉전도'는 "울릉도에 있는 모든 섬은 대한제국의 영토"이라는 말이고, 둘째, '죽도'는 "울릉본섬에서 '죽도' 내에 위치한 섬은 모두 대한제국의 영토"이라는 말이다. 셋째, '석도'는 "독도까지 동해상의 섬은 모두 대한제국의 영토"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석도가 독도이라는 말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 일본은 석도가 관음도라고 계속 우기고 있다. 상식은 누구나 모두 알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상식적인 것을 논증하라고 한다면 그 말에는 얼마나 어패(語弊)가 많은가!



최장근 대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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