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난 집에서 한 살배기 아들을 구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여성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갑작스런 화재로 아이를 구하지 못한 건 맞지만, 고의는 아니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 최수환)는 26일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상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24)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2019년 4월 자택에서 12개월 된 아들 B군과 단둘이 있던 중 불이 나자, 혼자서만 집을 빠져나와 B군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판결문 등에 따르면, A씨는 화재 당시 작은방에서 잠들어 있다 B군이 누워있던 안방에서 불이 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불은 침대 전기장판에서 시작됐는데, A씨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깬 뒤 곧바로 현관문부터 열었다. 이후 밖에서 도와줄 사람들을 찾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 행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사이 불길이 더 번지면서 결국 아이를 구하지 못했다.
검찰은 이에 A씨를 아이 사망의 책임을 물어 기소했다. “화재 당시 둘의 거리는 2m에 불과했고, 이런 상황에서 아기를 데리고 나온 다음 도망치는 게 일반적임에도 혼자 대피해 아들을 사망하게 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A씨 측은 아이를 구하지 못한 것은 맞지만, 고의로 아이를 방치한 건 아니라고 항변했다. 아이를 그냥 둔 채 현관문을 먼저 열러 간 것도, 도망이 아니라 연기를 먼저 빼내겠다는 판단에 따른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 A씨 남편도 ‘아이에게 가장 노력하고 사랑한 사람이 아내’라며 재판부에 탄원을 요청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화재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과 시뮬레이션 결과 등을 토대로 “별다른 망설임을 갖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손쉽게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며 “화재 당시 아이를 내버려 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화재로 합리적인 판단이 어려운 상태에서 바로 아들을 구조하기보다는, 먼저 현관문을 열어 연기를 빼내고 구조하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라고 나름 판단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A씨가 아들을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유기의 고의를 갖고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공소사실(검찰 측 주장)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판에 출석한 A씨는 선고 내내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판사가 주문을 읽고 “수고했다”고 말하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