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무책임" "사인 규명 먼저" 서울대 '청소노동자 죽음' 이견

입력
2021.07.26 16:30
민주노총 등 학내외 단체, 대자보 집단 게시
학생들 "갑질 등 의혹 외면… 학교 대처 실망"
"진상규명 중… 섣부른 비난 안돼" 반응도

서울대 청소노동자 이모씨 사망 사건에 대해 학내외 단체들이 학교 측 책임을 묻는 대자보를 집단 게시하는 행사를 진행하자 학생들이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청소노동자를 상대로 한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의혹을 두고 한쪽은 "학교가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을, 다른 쪽은 "사인이 규명될 때까지 섣부른 판단은 자제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각각 내놓고 있다.


"학교에 실망" 학내외 자보전 진행

2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 등은 지난 23일부터 서울대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이씨에 대한 추모와 사건 진상규명 촉구를 담은 대자보 10여 건을 전시하는 이른바 '자보전'(대자보+전시)을 진행하고 있다. 이달 30일까지 진행될 이 행사엔 학내에선 비서공,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 서울대 민주동문회 등이, 학외에선 민주노총 등이 참여했다.

각 단체 대자보는 공통적으로 학교 당국의 대처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싣고 있다. 비서공은 이씨를 포함한 청소노동자들의 '직장 갑질 피해' 사례로 알려진 '영어 필기시험'을 문제 삼았다. 이 단체는 "학교 측은 그간 여러 차례 필기시험이 근무 평가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해명해왔지만, 시험 당시 '근무 성적 평정에 적극 반영될 계획'이란 공지가 있었음이 드러났다"며 "학교 당국에 대한 실망이 날로 커져간다"고 성토했다.


학생들 "문제 공감" vs "판단 신중해야"

대자보를 보러 온 학생들은 대체로 게시자들의 주장에 공감했다. 2학년 이모(20)씨는 "교내에서 청소노동자가 숨진 게 처음이 아닌 만큼 학교가 신속히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줄 알았다"며 "학교가 오히려 지난 2년간 노동환경 개선 성과를 강조하면서 사과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니 노조의 문제의식에 공감된다"고 말했다. 3학년 정모(22)씨는 "학교가 유족과 노조의 공동조사 제안을 거절하고 교내 인권센터에 조사 의뢰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학교를 신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학생들은 갑질 및 과로 의혹과 이씨 사망의 연관성이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며 신중론을 제기하고 있다. A(22)씨는 "특정 인물과 집단을 악마화하는 방식으로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이번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될까봐 (대자보) 게시판을 찾아가지 못하고 혼자 조용히 추모 중"이라고 말했다. 4학년 B씨는 "이씨가 생전 갑질로 힘들어했는지, 업무량이 지나쳤는지가 정식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며 "그 전에 학교와 (갑질) 당사자를 섣불리 비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인 규명을 둘러싼 논란과 별개로, 서울대가 노동자 업무 환경에 보다 관심을 갖고 실태 파악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영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 예방 태스크포스(TF)가 진행한 화상 토론회에서 "서울대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고 필요한 제도를 심도 있게 고안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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