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따른 배달 수요 급증으로 폭리를 취하는 배달대행업체와 달리, 배달기사들은 상당한 불공정 계약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배달업체들은 사고 발생 시 모든 책임을 배달기사에게 지우고, 항변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토교통부·서울시·경기도·한국공정거래조정원과 함께 지역 배달대행업체와 배달기사 간의 계약서를 점검한 결과, 이 같은 문제 조항이 상당수 발견됐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생각대로·바로고·부릉 등 분리형 배달대행 서비스 상위 3사와 거래하는 경인 지역 700여 개 배달대행업체 중 배달기사 수가 50명 이상인 163곳을 대상으로 했다.
배달대행은 배달의민족 등 배달 애플리케이션(앱)과 계약된 배달기사가 음식을 배달하는 ‘통합형’과 음식점이 배달대행앱에 요청하면 지역 배달대행업체가 해당 업무를 배달기사에게 배정하는 ‘분리형’으로 나뉜다.
이들 업체들은 건당 수수료를 100~500원으로 정해 놓고 변동 가능 사유에 대해선 명시하지 않았다. 배달대행업체가 해당 범위 안에서 일방적으로 수수료를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배달 중 사고가 나도 배달기사에게 책임을 전부 돌리는 등 배달기사에게 불리한 배상책임 규정도 만연했다.
배달기사가 여러 배달대행업체의 업무를 수행하는 ‘멀티호밍’을 금지하거나, 영업비밀 보호 목적으로 계약 해지 후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할 수 없도록 한 곳도 있었다. 단순한 계약상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통지나 항변의 기회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조항도 발견됐다.
공정위는 점검 결과를 수용한 111개 지역 배달대행업체가 표준계약서를 채택하고, 13곳은 기존 계약서 중 불공정 조항을 자율 시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점검으로 배달기사 1만2,000여 명의 처우가 나아질 전망이다. 표준계약서는 배달대행업체의 갑질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해 10월 배달업계와 노동계가 합의를 통해 마련한 계약서다.
표준계약서 채택과 자율 시정을 모두 거부한 업체는 17곳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표준계약서 채택 등을 강제할 수 없다”며 “추후 해당 업체에 대한 신고 접수 시 자율 시정 요청에 불응했던 전력까지 감안해 부당성을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22곳은 폐업·주소 불명으로 조사에선 제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