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빈 대장, '장애인 최초' 14좌 정복 후 실종... "구조 도중 능선쪽으로 추락"

입력
2021.07.20 00:08

'열 손가락이 없는 산악인' 김홍빈(57) 대장이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좌를 모두 오른 뒤 하산 도중 실종됐다.

광주산악연맹과 대한산악연맹 등에 따르면 김 대장은 18일 오후 8시 58분(이하 한국시간)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 제3고봉인 브로드피크(해발8,047m) 등정에 성공했다. 하지만 정상에서 캠프4로 하산하던 19일 오전 4시쯤 해발 7,900m 지점 크레바스(거대 빙하 계곡) 근처에서 조난을 당했다.

김 대장은 오후 1시 55분쯤에야 정신을 차리고 위성 전화로 구조를 요청했고 캠프4에 대기 중이던 러시아 구조팀이 즉각 출동해 오후 3시쯤 김 대장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김 대장은 구조팀을 향해 손을 흔들 정도의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러시아 구조대원 1명이 내려가 물을 제공한 뒤 김 대장을 주마(등강기)에 태운 뒤 줄에 묶어 15m가량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줄이 헐거워졌고 김 대장은 능선 아래쪽으로 추락한 뒤 실종됐다. 광주산악연맹 관계자는 “파키스탄 대사관에 구조 헬기를 요청했다”면서 “현지 원정대와 파키스탄 정부 협조를 통해 수색 작업을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 대장은 이번 브로드피크 등반 성공으로 장애인 등반가로는 세계 처음으로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개에 모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비장애인까지 포함하면 한국에서는 7번째, 세계에서는 44번째다. 김 대장은 정우연 류재강 정득채 대원 및 현지인들과 등반대를 꾸렸는데, 이 가운데 식량 담당 정우연 대원도 하체에 장애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장이 이끄는 등반대는 6월 14일 파키스탄으로 출국해 지난달 말 해발 4,850m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이후 고도별로 공격 캠프를 구축하며 정상 공략의 기회를 엿봤다. 그리고 17일 정상에 오를 예정이었으나 많은 눈과 예상치 못한 크레바스와 맞닥뜨리는 바람에 하루 늦어졌다. 이선규 광주시산악연맹 전무는 “해발 7,500m 지점에서 대형 크레바스를 마주하는 바람에 캠프4를 예상보다 낮은 7,200m 지점에 설치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시간 18일 오전 3시에 캠프4를 출발, 18시간에 걸친 등반 끝에 브로드피크 정상에 올랐다. 브로드피크 원정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5년 정상에 도전했지만 7,600m 지점에서 악천후를 만나 그냥 내려와야 했다.

지난 2006년 가셔브룸 2봉(8,035m)을 시작으로 14좌 완등까지 15년이 걸렸다. 13번째 봉우리인 가셔브룸 1봉(8,068m·2019년 7월 7일) 등정 이후 2년 만에 대업을 완성했다.

김 대장은 27세인 지난 1991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 단독 등반 중 조난을 당해 동상에 걸렸다. 구조대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목숨은 구했지만 7번에 걸친 수술에도 불구하고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손끝에 힘을 주고 암벽을 올라야 하는 등반가에겐 사실상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김 대장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재기를 결심하고 하체 근력 강화에 집중했다. 손 힘을 덜 쓰더라도 하체 힘을 더 길러 추진력을 얻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래서 스키와 사이클에 입문했다. 실제로 1999년 장애인스키 국가대표로 발탁됐고,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 패럴림픽에도 참가했다.

김 대장은 1997년(엘브루스·5,642m) 7대륙 최고봉 등정을 시작, 12년 만인 2009년 남극의 빈슨매시프(4,897m)까지 완등했다. 그 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2007년 5월 16일)에 올랐고, 2012년엔 험하기로 이름난 K2를 등정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대장은 이번 등반을 앞둔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많은 국민이 힘들다. 힘들 때 저를 생각해 달라”며 자신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작은 용기라도 줄 수 있기를 희망했다.

강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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