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정치의 동심원- 중심과 둘레

입력
2021.07.19 19:00
25면

편집자주

우리나라 대표 원로지성이자 지식인들의 사상가로 불리는 김우창 교수가 던지는 메시지. 우리 사회 각종 사건과 현상들에 대해 특유의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데에는 전공을 선택하여야 한다. 그러나 학문의 전문 분야는 인접한 다른 분야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학문의 전체성 속에서 바른 균형을 유지하고 바른 의미를 얻는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삶의 큰 테두리에 비추어 정당화된다.

흔히 쓰이는 문사철(文史哲)은 문과 학문의 중심 과목들을 말하는데, 이러한 과목들이 서로 겹치면서 인접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 그것들은 문화나 인생사의 주요 부분을 이룬다. 문사철에 인접하면서 같은 영향권에 속하는 분야로 경제나 정치를 추가하여 생각할 수도 있다. 인간 행동을 매개하는 것은 대체로 집단이기 때문에, 사회 조직과 구조에 대한 고려를 빼놓기 어렵다. 또 학문의 정당성은 결국 삶의 현실에서 온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삶의 생물학적 토대도 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토대는 생명이 위치해 있는 물질 세계로 확대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물질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학문적 추구의 근저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학문 연구는 어떤 전문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 전체를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우리 전통에서, 주로 우주론과 윤리로 집약되었지만, 학[學]은 이러한 보편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요구는, 적어도 개인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기획을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래도 이 전체성에 대한 요구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 만큼 그에 대한 적절한 적응의 전략이 있게 마련이다. 다시 말하건대, 학문에 있어서 특정한 전문분야는 여러 겹의 둘레를 가진 동심원의 중심으로 존재한다. 이 중심과 둘레에 대한 의식은 피할 수 없는 학문 의식의 총체이다.

여기에서 학문의 존재방식을 말하는 것은 어떤 일을 심각하게 그리고 넓게 생각하려면 그 일과 관계된 여러 일들을 전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자는 뜻에서이다. 정치에 있어서도 그렇다. 현 정부가 내걸었던 여러 정책들, 즉 적폐청산, 부동산 투기 방지,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여러 관계 사항들 그리고 정책의 포괄적 의미에 대한 고찰이 충분히 깊고 넓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지금의 시점에서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이다. 정치 지도자는 구체적인 문제 또는 문제들에 집중하고 그것을 바르게 풀어 나갈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동시에 그것에 이어지고 또 에워싸고 있는 여러 문제 영역들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학문은 진리 탐구를 목적으로 한다. 학문을 하는 데에도 여러 세속적인 욕망들이 작용하겠지만, 그 중심에는 진리탐구에 대한 열의가 있어서 학문적 노력이 지속될 수 있다. 보다 실제적인 삶의 문제에 있어서 진리 탐구의 열의에 해당하는 것은 진실성이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참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정치 지도자의 도덕성 그리고 양심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그러한 품성은 좁은 의미에서의 독선적 집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깊고 넓은 지성, 실천력 그리고 양심, 이러한 것들을 구비한 인품이 어떻게 드러나고, 그것을 국민이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지만, 그러한 능력을 갖춘 사람을 일반 대중이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옛날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때, 포스터에는 “○○○ 선생을 국회로 보냅시다” 하는 문장이 쓰였다. 이것은 존경받는 사람이 있고, 일반대중도 그러한 인물을 알아본다는 것을 전제한 표현이었다. 오늘의 시대에 뛰어난 지도자를 공직에 모시는 데에 이러한 표현이 정당화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현실적인 희망인지는 오늘의 시점에서 필자도 자신이 없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