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운 와인' 코냑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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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7 10:00
15면

편집자주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격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2018년 소펙사(Sopexaㆍ프랑스 농수산공사) 소믈리에 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우승자인 출판사 시대의창 김성실 대표가 씁니다.

몇 해 전 독일 뮌헨 곳곳의 미술관을 관람한 적이 있다. 세계 6대 미술관으로 독일과 르네상스 회화뿐만 아니라 13~18세기 유럽 주요 회화를 소장한 알테 피나코테크에도 들렀다. 그곳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렘브란트, 뒤러, 루벤스 등 거장들의 그림에 감탄하다가 ‘네덜란드 회화’ 방에 들어섰다. 그림 하나가 내 눈길을 끌었다. ‘와인 상인 길드 대표자들’이라는 작품이었다. 그림 속 네덜란드 와인 상인들의 표정에서는 여유와 자신감이 풍겼다.

그림 풍을 보고는 화가가 당연히 렘브란트일 거라 짐작했는데, 알고 보니 페르디난드 볼이라는 화가였다. 그는 한때 암스테르담에서 렘브란트에게 사사한 적이 있다. 그림 풍이 비슷한 이유였다. 그는 이 그림을 1663년에 그렸다. 당시 네덜란드는 세계 해상무역을 주름잡았으니 와인 상인들의 표정이 그럴 만도 했다.


'17세기 최고 부자 나라'였지만 와인 불모지

17세기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부유한 나라 중 하나였다. 1602년 세계 최초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를 만들어 해상무역을 장악했다. 1609년에는 증권거래소를 최초로 세웠다. 이 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아 여러 사업을 벌였다.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권한과 조직 규모가 한 국가에 필적할 정도였다고 한다.

와인 상인 길드 회원들은 동인도회사의 상선과 군함에도 와인을 팔았으니 거래 과정에서 숱한 정보를 알아내 주식에 투자해 부를 쌓았을 것이다. 이들은 어떤 와인을 팔았을까.

네덜란드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도 와인을 생산하지 못했다. 포도나무를 재배하기에는 기후가 알맞지 않은 데다 국토의 대부분이 해수면 높이와 비슷하거나 낮았기 때문에, 제아무리 둑을 쌓고 댐을 만들고 풍차를 돌린다 해도 포도 농사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주로 포르투갈, 에스파냐를 비롯해 라인 지방과 프랑스, 특히 보르도 와인을 수입해 곳곳에 재수출했다. 이 배경에는 백년전쟁이 있었다. 전쟁 탓에 보르도 와인은 최대 시장인 영국으로의 수출에 제약을 받았다. 보르도 사람들은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야 했다. 이들은 프랑스 국왕에게 허가를 받아 한자동맹 상인들과 거래를 텄다. 그들을 통해 와인을 북유럽과 영국으로 수출한 것이다. 그러다 무역 주도권이 한자동맹에서 네덜란드로 옮겨가자 네덜란드 상인들과 거래했다.

네덜란드는 어떻게 무역 주도권을 잡게 되었을까. 14세기 말부터 북유럽인들의 단백질 공급원인 청어의 산란지가 발트해에서 네덜란드와 접한 북해로 바뀌었다. 청어 노다지를 맞아 ‘빌렘 벤켈소어’라는 어부는 청어 손질에 특화된 작은 칼을 고안했다. 이 칼이 널리 퍼지면서 청어 손질 속도가 빨라졌다. 게다가 에스파냐의 레콘키스타(그리스도교 세력이 711~1462년까지 이슬람에 빼앗긴 이베리아반도를 되찾기 위해 벌인 재정복 전쟁) 이후 추방당해 지금의 벨기에와 네덜란드로 이주한 유대인들의 덕도 보았다. 이들이 값싸고 질 좋은 소금을 공급한 덕에 네덜란드는 염장 가공한 청어를 수출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80년 전쟁(네덜란드 독립전쟁) 끝에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한 것도 ‘청어’ 덕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요인들로 신흥 강국이 된 네덜란드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에 이어 대서양과 인도양 개척에 뛰어들었다. 대항해시대에 합류한 것이다. 이때부터 네덜란드 와인 상인들은 선원들에게 새롭게 떠오른 술, 기존 와인과는 전혀 다른 술을 팔아 큰돈을 벌었다. 바로 와인을 증류한 술인 브랜디다.


의료 목적으로만 허가됐던 증류법의 대중화

대항해시대 이전에도 유럽에서는 증류법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증류법으로는 술을 만들 수가 없었다. 의료 목적으로만 허가되었기에 약사나 의사만 증류법을 쓸 수 있었다. 증류주를 ‘생명의 물’, 즉 아쿠아비테(프랑스어로 오드비(Eaux-de-vie))’라 칭한 까닭인 셈이다. 그러다 16세기 초 프랑스에서 식초 업자에게 증류를 허가했다. 1537년부터는 술집 주인도 증류를 할 수 있게 되자, 이들은 본격적으로 브랜디를 만들었다.

‘브랜디(Brandy)’라는 이름은 ‘태운 와인’이라는 뜻의 네덜란드어 ‘브란데베인(brandewijn)’에서 비롯했다. 이는 네덜란드 와인 상인들의 역할과 영향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브랜디는 곧 와인보다 각광을 받았다. 수요가 급증하자 네덜란드 상인들은 보르도와 루아르 강변에 증류소를 세웠다. 그런데 브랜디용 와인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브랜디 1ℓ를 생산하려면 와인은 9ℓ가 필요했다. 당시 보르도 와인은 점차 고급화하는 추세인지라 보르도 생산자들은 굳이 브랜디용으로 와인을 팔 이유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네덜란드 상인들은 보르도 위쪽의 샤랑트푸아투 지방을 대안으로 택했다.


울창한 삼림, 브랜디의 성지 샤랑트푸아투

샤랑트푸아투 지방은 과거 영국령이었을 때 와인 수출을 놓고 보르도항과 경쟁하던 라로셀항이 있는 곳이다. 한때 보르도보다 번성하기도 했지만 보르도에 밀려 와인 산지로서의 명망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증류소를 세우기에 더없이 좋았다. 삼림이 울창해 불을 땔 목재가 널렸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이곳 와인 생산자들에게 수확량이 많은 품종을 재배하도록 권했다. 증류할 와인은 모름지기 질보다는 양이기 때문이다. 1624년에는 이곳에 증류소가 세워졌다. 20년 뒤에는 브랜디에 세금이 부과되었다. 증류소가 들어선 지 40년도 안 된 1660년대에 샤랑트푸아투 지방은 브랜디 생산의 메카가 되었다.

예의 와인 상인 길드에 속한 네덜란드 상인들이 브랜디 무역을 독점했다. 이곳에서 브랜디를 수입해 국내는 물론 영국, 북유럽에 재수출했다.

특히 식민지로 향하는 군함과 상선의 선원들이 브랜디를 선호했다. 알코올 도수가 높아 긴 항해에도 변질할 염려가 없었고, 와인보다 부피도 훨씬 작아 적재 공간을 덜 차지했기 때문이다. 또한 식수에 브랜디를 섞으면 위생적으로 수분을 보충할 수 있었고, 상처를 소독하기에도 알맞았을 뿐만 아니라 추운 날에는 브랜디 한 잔으로도 몸을 덥힐 수 있었으니 말이다. 생산자나 상인 입장에서도 와인보다 운송비나 세금이 적다는 이점이 있었다.

이 술이 바로 브랜디의 대명사인 코냑이다. ‘코냑’은 코냑 지역, 즉 행정구역상 샤랑트푸아투 지방의 6개 세부구역에서 생산되는 브랜디만을 일컫는다. 그랑드 상파뉴(Grande Champagne), 프티트 상파뉴(Petite Champagne), 보르드리(Borderies), 팽부아(Fins Bois), 봉부아(Bons Bois), 부아 오르디네르(Bois Ordinaires)에서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증류해 만든다.


상파뉴의 숨은 뜻, 석회질 토양

이 중 그랑드 상파뉴와 프티트 상파뉴가 최고급이다. 그랑드 상파뉴에서는 묵직하고 강렬한 브랜디를, 프티트 상파뉴에서는 가볍고 섬세한 브랜디를 생산한다. 두 곳의 브랜디를 섞어 만든 브랜디에는 핀 상파뉴(Fine Champagne)라는 명칭을 붙인다. 이를 두고 ‘고급 샴페인’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 ‘상파뉴’는 샴페인을 생산하는 상파뉴가 아니라 ‘백악질(석회질) 토양의 평원’을 뜻한다.

증류용 와인에는 위니블랑(코냑에서는 생테밀리옹이라 부른다)을 90% 이상 사용하고 콜롱바르, 폴 블랑슈, 세미용 등의 품종을 규정 내에서 섞어 사용한다.

구리 증류기에서 와인을 두 번 증류해 얻은 오드비(막 증류를 마친 70도 정도의 증류주)를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최소 2년간 숙성해 만든다. 숙성하면서 연 2%씩 증발하는데, 이를 천사의 몫이라 한다. 숙성을 마치면 탈염수를 섞어 최소 알코올 도수 40도로 맞춰 출시한다.


증류는 수확한 이듬해 3월 31일까지 마친다. 코냑의 숙성연령 기준일이 4월 1일인 까닭이다. 막 증류를 마친 오드비를 콩트(compte)0이라 한다. 오크통 숙성을 시작해 이듬해 4월 1일이 되면 콩트1이 된다. 해를 거듭하면서 콩트2, 콩트3으로 높아진다.

코냑은 숙성연령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각 등급에 여러 명칭을 사용하지만 대표적인 명칭은 다음과 같다. V.S(Very Special)나 ‘스리스타’ 심벌은 최소 2년 숙성한(콩트2) 코냑이다. V.S.O.P(Very Special Old Pale)나 레제르브(Réserve)는 최소 4년 숙성한(콩트4) 코냑이다. 나폴레옹(Napoléon)은 최소 6년 숙성했고(콩트6), 10년 이상 숙성한(콩트10) 코냑은 X,O나 Extra Old라 표기한다(애초 콩트6에서 2018년부터 콩트10으로 기준이 변경됐다.).

이외에 회사에 따라 최상급 코냑에 붙이는 오르 다주(Hors d’Âge)나 X.X.O 등도 있을뿐더러 고객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는 초고가의 코냑도 있다. 다만, 코냑은 등급에 따라 최소 숙성 기준만 만족시키면 되므로 같은 등급이라도 회사에 따라 숙성연령은 다를 수 있음에 유의하자. 일례로 ‘나폴레옹’도 회사에 따라 숙성연령이 6년일 수도, 그 이상일 수도 있다.

한편 네덜란드 상인들은 브랜디뿐만 아니라 다른 증류주 생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노간주나무 열매(주니퍼베리)가 재료인 ‘진(Gin)’이다. 진은 네덜란드인들을 통해 영국에 소개돼 ‘진광풍(Gin Craze)’이라는 큰 사회문제를 야기한 술이다. 산업혁명 시기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중노동을 해야 했던 노동자들과 도시 빈민들은 “한 푼이면 취하고 두 푼이면 만취”할 수 있는 값싼 진 탓에 알코올 중독에 빠져들었다. 당시엔 브랜디와 진뿐만 아니라 럼, 위스키, 보드카 등 다른 재료로 만든 증류주도 유행했다.


브랜디의 핵심은 과일주 증류

그래서인지 수도자들은 브랜디를 이용해 약성이 있는 혼성주(Liqueur)를 만들기도 했다. ‘베네딕틴’은 브랜디에 꿀과 허브를 넣어 만든 술로, 노르망디의 베네딕토회 수도자들이 만들어 붙은 이름이다. 샤르트뢰즈에서 시작된 카르투시오회 수도자들도 ‘샤르트뢰즈’를 만들었다. 브랜디에 무려 130가지의 허브를 넣어 숙성시킨 술이다. 어떤 허브를 어떤 비율로 섞었는지는 그들만의 비밀이라고 한다. 샤르트뢰즈는 지금도 수도자들의 감독하에 생산된다.

참,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브랜디는 과일주를 증류해 만든 고 알코올 증류주를 일컫는다. 주로 포도로 만들지만 사과 등 다른 과일로도 만든다. 이를테면 칼바도스는 사과주를 증류한 브랜디다. 그래서 “모든 코냑은 브랜디다. 하지만 모든 브랜디가 코냑은 아니다.” 이 유명한 말에 댓글을 달자면, 필자는 뭐든, 브랜디를 좋아한다.

시대의창 대표ㆍ와인 어드바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