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적 보수주의자’ 이상돈 전 국회의원이 회고록을 출간했다. 지난달 3일 출간된 ‘시대를 걷다’에서 ‘피난둥이’로 탄생해 국회의원 임기를 마친 지난해까지 70년 인생을 시대순으로 정리했다. 이 전 의원은 정파를 초월한 소신 행보로 ‘보수를 비판하는 보수’, ‘합리적 보수’로 평가받는다. 1세대 환경전문가로서 보수 진영 내에서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에 의해 당 비대위원으로 참여, 2012년 총선과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통에 실망, 2016년 ‘제3지대 정당’을 내세운 국민의당에 합류했지만 안철수 전 대표의 방식에 반발해 독자 노선을 걸었다. 책 후반부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복잡하게 전개된 한국 정치 흐름을 종합적으로 담았다. 특히 4대강 사업 반대에 앞장선 이유와 국민참여소송, 새누리당 비대위·대선 캠프 시절과 탄핵 정국, 국민의당의 화려한 데뷔와 몰락의 과정을 생생히 증언했다. 이 전 의원을 9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나 출간 계기와 후일담을 구체적으로 들어봤다.
-회고록을 낸 계기는.
“살면서 보통 사람이 경험하기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은 편이다. 이제 정치에 직접 간여할 일이 없으니 중요 사건의 한복판에 섰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우리나라에 기록을 남기는 문화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 글은 과장이 많고, 기자들은 취재 경험을 책으로 엮는 경우가 아직 드물다.”
-12년 총선 승리 후 박근혜 대선 캠프 첫 회의부터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고 썼다.
“그렇다. 마땅히 들어갔어야 할 주요 인사들이 배제됐다. 그리고 대통령 당선 후 초기 청와대 라인업에도 대중이 설득될 만한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했다. 측근에 의존하고 논공행상이 올바르게 안 되면서 결국 정권이 이렇게 됐다.”
-12년 대선 전 경선토론을 앞두고 5·16, 10월 유신, 인혁당 판결, 정수장학회 등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답변을 직접 작성했다. 답답함을 느꼈다고 회고했는데.
"당시 박 후보는 부친과 관련된 과거사를 털어내지 못했고 정수장학회 문제에도 도무지 개념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하는 게 왜 문제가 되냐’는 입장이 너무도 완고했다. 그러한 태도가 결국 오늘날 사태까지 오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 사면론에 대한 생각은.
“더 이상 감옥에 두는 게 의미가 없지 않나. 그런 수모를 겪으면서 보통 사람의 열 배, 스무 배의 대가를 치르지 않았나. 당연히 사면해야 한다.”
-같이 비대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준석 대표는 지금 정치권 최고스타가 됐다. 지나간 얘기지만 12년 총선에서 활약했던 청년정치인 이준석, 손수조를 박 전 대통령이 집권 후 방치했다고 비판했는데.
“집권하면 좋은 점이 20~30대 정치 신인을 청와대 정무직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서관, 행정관으로 이력을 키워주고 지방의회, 국회의원 선거에 내보낸다. 노무현 정부 때 민주당은 굉장히 잘했는데, 보수 정권 9년 동안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사람을 키우지 않았으니까 지금 당내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거다.”
-정치 신인의 진입 장벽을 낮출 방안이 있다면.
“일례로 공천심사위가 우세 지역에 전략공천할 수 있다. 지난 총선에서 윤희숙, 조태용 의원보다 더 많았어야 했다. 그런데 본업이 좋은 사람들이 정치를 하려 하지 않는 분위기도 큰 원인이다. 판교 지역 회사원의 평균 인텔리전스와 여의도 300명을 비교하면 어디가 더 높을 것 같나.(웃음)”
-문재인 대통령 관련한 내용도 나온다. 14년 9월 이상돈 의원을 당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기로 박영선 비대위원장과 사전에 합의해놓고 당내 일부 반발이 일자 침묵했다는 부분이 눈에 띈다.
“측근 반발이 거세서 그랬던 것 같다. 이게 문 대통령의 치명적 결점이다. 어떤 결정이든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지 않나. 리더는 결정 전엔 신중하고 결정 후에는 책임지고 밀고 나가야 한다. 참모 간 이견 있으면 조화시키거나 한쪽 아니면 모두를 내치든가 해야 한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그렇게 싸우는데도 직접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지 않았나.”
-국민의당 합류와 국회 입성 계기는 윤여준 전 장관의 권유였다.
“제3당이 그분 지론이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가 양당제에서 비롯된 것이니 제3당이 자리 잡아야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 대표에 대해선 시종일관 혹독할 정도로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 이유는.
“정치인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은 역사 소양이라고 보는데 그게 전혀 안 된 사람이다. 작은 당에서 호남의원도 떨어져나가고 안철수계끼리도 조화를 못 시켰다.”
-호남 다선과 ‘중도’ 안철수의 만남은 지속되기 어려운 조합 아니었을까.
“호남에 치중된 건 맞지만 초선이 절반이었고 역대급으로 의원 수준이 좋았다. 어떻게든 당을 끌고 갔어야 했지만 대선 패배 후 박지원 대표가 물러나면서 어려워졌다. 대선 패배는 후보가 TV토론에서 '내가 MB 아바타입니까' 한 탓인데 당대표가 뭘 잘못했나.”
-개원하자마자 리베이트 사건이 당을 뿌리째 흔들었고 안 대표의 ‘사드 배치 반대’ 기자회견으로 당의 명분인 ‘제3지대론’이 한순간에 붕괴했다고 탄식했다.
“사드배치 반대는 민주당도 쉽게 하지 못한 사안인데 신중했어야 했다. 최고위원이었던 나도 전혀 알지 못했다. 당에 독이 됐다.”
-국민의당의 연이은 이합집산으로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당적이 자주 바뀌었다. 배경으로 교섭단체에 편중된 정당교부금 제도를 지적했는데.
“모든 면에서 교섭단체일 때와 아닐 때의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 교섭단체 정당의 위원이 상임위 간사가 돼 당 세력보다 훨씬 많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도 문제다. 20석 기준도 없앨 수는 없는지 궁리해볼 문제다.”
-내년 대선 전망이 궁금하다.
“국민의힘이 분열과 파열음 없이 매끄럽게 후보를 뽑으면 승리할 확률이 높다. 후보 선정이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다.”
-야권에서 가장 강력한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선 비판적 입장이 확고하다.
“윤석열 검찰이 적폐수사에서 직권남용을 적용했는데 무죄가 많이 나왔다. 조윤선 전 장관 ‘블랙리스트’ 작성과 몇몇 판사도 직권남용은 무죄다. 검찰권을 무리하게 행사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무조건 대법원까지 재판을 끌고 간다. 영미법은 1심이 무죄면 검사는 항소할 수 없다. 대륙법에서도 1심 무죄가 나올 경우 우리처럼 끈질긴 곳은 별로 없다. 그런데 (줄곧 공격해온) 저 당에서 후보가 된다는 게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게다가 요즘 가족과 관련해 별의별 이야기가 돌아다닌다. 후보는 가급적 본선에서 리스크가 적은 사람을 골라야 하지 않나.”
-최재형 전 원장의 경쟁력은 어떻게 보나.
“윤석열이 안 되고 기존 홍준표, 유승민의 지지율이 안 나올 경우 다크호스처럼 등장할 수 있다. 현재 야당의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 당내 사람 지지도는 2, 3%고 당밖 사람에 대한 기대만 큰데 거기에도 A, B가 있다. 이것이 야권을 꼬이게 만들고 민주당은 거기에 기대하는 거다.”
-이재명 지사가 중앙대 법대 교수 시절 제자였다. 이 지사의 경쟁력은 어떻게 보나.
“자신의 고유 가치인 진보를 지키는 건 좋지만, 대통령 선거에 나가면서 세금을 올리겠다고 하면 되겠나 싶다. 세금을 올린 정권은 다음 선거에 반드시 졌는데, 하물며 세금을 올리겠다고 공약하는 사람이 될까. 본선을 생각한다면 저런 식의 정책을 내면 어렵다고 본다. 현 정권이 인기가 없으니 ‘이건 완전히 새로운 정권’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외교, 경제, 사회의 새 인물을 내세우고 스윙보터를 흡입할 수 있는 공약을 내야 해볼 만할 텐데 당내 경선에 묶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