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이트'서 영화 첫 주연 진기주 "뛰고 또 뛰다 아파서 울기도 했죠"

입력
2021.07.12 14:29
스릴러 '미드나이트'서 청각장애인 경미 역 
연쇄살인범 위협 피해 도심 질주하는 연기 펼쳐

삼성SDS 컨설턴트, SBS의 네트워크 방송사인 G1 기자, 슈퍼모델 그리고 배우.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네 사람 이야기 같지만 실은 단 한 명의 이력이다. 종잡을 수 없는 이색 경력을 지닌 주인공은 진기주(32). 2018년 JTBC 드라마 ‘미스티’와 영화 ‘리틀 포레스트’로 주목 받기 시작해 MBC ‘이리와 안아줘’, SBS ‘초면에 사랑합니다’를 거쳐 지난 3월 시청률 30%대를 기록하며 종영한 KBS ‘오! 삼광빌라’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는 배우다.

드라마로 쌓은 연기력을 인정받아 영화 주연까지 꿰찼다. 지난달 30일 극장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으로 동시 공개된 영화 ‘미드나이트’는 청각장애인 경미(진기주)가 연쇄살인마(위하준)의 집요한 위협과 추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을 그린 스릴러다. ‘연골나이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주인공들이 스포츠 영화 못지않게 뛰고 또 뛰는 영화다. 진기주는 청각장애인 연기부터 도심 곳곳을 전력 질주하는 연기까지 첫 영화 주연작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영화 개봉에 맞춰 온라인으로 만난 그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땐 이렇게 많이 뛸 줄 몰랐다”면서 “학창 시절엔 달리기를 잘 못해서 무시당하곤 했는데 인물의 감정을 담아서 뛰니 원래 실력보다 빨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매일 같이 전력을 다해 뛰다 보니 탈도 났다. 낮과 밤이 뒤바뀐 촬영 일정 속에서 피로가 누적돼 발을 떼기도 어려울 만큼 허리와 허벅지, 고관절의 통증이 심해진 것이다. 그는 “몸이 너무 아파서, (제대로 연기할 수 없어) 속이 상해서 구석에 가 혼자 울었다”면서 “무술감독님이 준 진통제를 먹고 아프지 않은 척하며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수어를 배우기 위해 개인교습을 받고 학원도 다녔다. 무엇보다 청각장애인을 제대로 연기하기 위해 학원의 농인 강사들의 특징을 면밀히 관찰했다. 젊은 농인 크리에이터가 출연하는 유튜브 영상도 참고하며 요즘 쓰이는 비속어와 신조어도 배웠다. 그는 “수어는 손동작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 표정과 눈빛 등이 다 어우러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어릴 때부터 비장애인과 함께 소통하며 그들의 입술을 읽으려 하는 등 관찰을 잘하는 인물이었을 거라 생각해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입술만 보고 대화하려 했다”고 말했다.

진기주는 영화 속 경미의 대사 중 ‘제발 내 말을 한 번만 들어주세요’라는 대사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다. 청각장애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답답함을 드러내는, 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은 대사다. 그는 “누군가 다가와 수어로 뭔가를 말하려 한다면 나 역시 지나쳐버리려 하는 사람이었을 수 있다”면서 “촬영을 마치고 나니 누군가 수어로 말을 걸어오면 잘 모르더라도 집중해서 한번 들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진기주는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 20대 중반에 연예계로 뛰어들었다. 학창 시절엔 엄두를 내지 못했던 연기를 회사원이 되고 나서야 조금씩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그 시작이 슈퍼모델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적지 않은 데다 학교나 학원, 극단에서 연기를 배운 적이 없어 오디션마다 고배를 마셔야 했다. 여느 배우들에 비해 무명의 공백이 길진 않았지만 데뷔작이 된 tvN ‘두번째 스무살’(2015) 오디션에 합격하기 전까지 몇 달간 ‘탈락의 시간’은 순탄하게 살아온 그의 인생에서 가장 불안했던 시기였다.

“’다운’이라는 걸 별로 못 느끼고 지내왔었죠.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었고 자존감이 높고 자신감도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 모든 것들이 없어지는 경험을 했던 게 연기를 시작하면서부터였어요. 몇 달간 계속 오디션에 떨어졌을 땐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불안감을 느꼈죠. 그 후로도 연기를 하면서 몇 번씩 무너지곤 했어요. 그래도 이젠 점점 내가 연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있구나 하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배우라는 직업에 익숙해지면서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액션 연기도 해보고 싶고, 멜로 영화의 주인공도 해보고 싶단다. “안 해 본 게 많아서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는 무궁무진하죠.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적어도 매년 한 작품씩에는 출연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올해 3월 ‘오! 삼광빌라’를 마쳤으니 너무 많이 쉬었어요. 아직 차기작을 결정하지 못했는데 빨리 다음 작품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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