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귀환

입력
2021.07.07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권에서 종교적 광신을 방불케 하는 맹목적 강경파를 비난할 때 흔히 사용되는 용어가 ‘탈레반’이다.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탈레반은 1996~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할 당시 여성의 교육과 경제 활동 금지, 문화유적 파괴, 태형과 공개참수 등 반인권·반문명적 행태로 악명이 높았다. 미국의 침공으로 아프간에서 축출된 후 정치적 비유로만 남았던 이 단체가 현실 무대로 귀환하고 있다.

□ 지난 2일 아프간 주둔 최대 미군 기지인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미군이 조용히 빠져나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국 대사관을 지키는 일부 병력이 남아 있긴 하지만 미군이 지난 20년간의 아프간 전쟁에서 발을 빼는 상징적 순간으로 꼽힌다. 미군 철수와 맞물려 탈레반이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정부 붕괴는 시간 문제라는 얘기가 나온다.

□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배후로 알카에다의 빈 라덴을 지목하고 탈레반에게 그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동맹국과 함께 아프간을 침공했다. 미국은 탈레반을 몰아낸 뒤 아프간 재건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고 민주주의를 이식시켜 2004년 직접 선거에 의해 아프간 정부도 출범했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는 미군 없이는 자립하지 못할 정도로 허약했고, 미국 내에서는 '아프간 수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여론이 지속됐다. 20년간의 전쟁과 재건 지원에도 불구하고 아프간은 다시 탈레반이 집권하거나 내전을 치르는 상태로 돌아간 셈이다.

□ 아프간에서 미군의 성격은 양면적이었다. 아프간 침공 당시 미군은 점령군이었지만 정부 출범 후에는 동맹 관계에 따른 주둔군이었다. 이런 국제법적 지위보다 중요한 것은 아프간 국민들이 미군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미군 철수 후 탈레반의 귀환을 환영하는 일부 주민들도 있지만 탈레반의 억압을 기억하는 여성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한다. 탈레반 부류에겐 미군은 언제나 점령군이지만 정치 종교적 광신도들에게 고통받았던 이들에겐 해방군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젠 미군 없이 나라를 재건해야 하지만 앞길이 암담해 보인다.


송용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