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마(그놈) 하나 때문에 동네 전체가 이 무슨 창피고?"
7일 오전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전통시장. 마을의 크고 작은 소식이 오가는 시장 골목길에서 만난 상인들은 세차게 쏟아지는 장맛비보다 '가짜 수산업자' 김모(43)씨 이야기에 잔뜩 흥분돼 있었다. 김씨와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한 가게 주인은 "13년 전에는 고향 친구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더니 이번에는 고향 구룡포의 특산품인 오징어와 대게로 사기를 쳐 마을 사람 모두에게 망신을 줬다"면서 "어디 가서 포항 구룡포에 산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라고 혀를 찼다.
포항 도심에서도 차로 40분은 족히 달려야 닿는 작은 어촌마을인 구룡포읍이 가짜 수산업자 김씨의 사기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구룡포읍에서도 그가 어릴 적 살던 구룡포리 주민들은 김씨가 13년 전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 수십 명을 울린 '변호사 사무장 사칭 사기 사건'을 떠올리며 "마을을 두 번이나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구룡포읍에서 초·중학교를 나온 김씨는 지방대 법대에 진학하며 고향을 떠났다가, 2008년 회사원 차림으로 다시 나타났다. 그는 동창들에게 법률사무소 사무장이 됐다고 말한 뒤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들만 골라 접근해 개인회생과 파산절차를 도와준다며 돈을 받았다. 하지만 김씨는 변호사 사무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약속한 일도 전혀 처리하지 않았다. 그의 말만 믿고 돈을 건넨 피해자는 36명. 피해액은 1억6,000만 원에 달했다.
김씨의 동창은 "김씨가 친구들을 변호사 사무실로 다 불렀는데, 알고 보니 직원이라고 소개한 사람은 김씨가 일당을 주고 채용한 연기자들이었고, 사무실도 세트장처럼 꾸민 가짜였다"며 "김씨에게 사기당해 빈털터리가 되거나 가정이 파탄 난 친구도 여러 명 있다"고 했다.
김씨는 출소 후 가짜 수산업체로 100억 원대 사기 행각을 벌일 때도 주도 면밀하게 움직였다. 그는 수산업체에 거금을 넣은 김무성 전 의원의 친형 등 투자자들의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 오징어 채낚기 어선 한 척을 잠시 빌린 뒤 투자금으로 구입한 어선이라고 속였다. 구룡포항 부둣가에서 만난 한 어민은 "이번 사건을 접하고 나서야 1년여 전 채낚기 어선 한 척을 빌려 달라고 돌아다녔던 사람이 김씨 직원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배를 빌린 사람이 김씨라는 걸 알았다면 누구도 빌려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산업자 행세를 하며 정치권 유력 인사를 만나고 다니던 김씨는 종종 수산업체 주소지로 등록한 구룡포읍 본가에 나타났다. 그는 외제 슈퍼카를 타고 재력을 과시하면서도, 정작 고향에선 이웃 주민은 물론 세입자에게도 인색했다. 김씨와 직원들은 무허가로 지은 집 마당 창고에서 매달 10만 원을 내고 홀로 살던 94세 세입자에게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하니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다. 김씨는 세입자로부터 꼬박꼬박 수도요금을 받으면서도 정작 수도요금을 내지 않아 세입자가 단수 통고를 받기도 했다. 김씨는 세입자의 집 천장에 물이 새도 고쳐주지 않다가, 독거노인이고 시각장애인이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읍사무소 등을 통해 100만 원을 받아 지붕을 교체해줬다.
구룡포 지역 한 어민단체 회장은 "수산업자가 아닌데도 여기저기서 자꾸 김씨를 수산업자라고 언급해 진짜 수산업자들이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며 "주민들 모두 김씨만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나서, 다시는 고향 땅에 발을 못 붙이도록 하고 싶을 지경"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