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57)가 5일(현지시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마존이 온라인 서점으로 설립된 지 꼭 27년 만이다. ‘다 이뤘으니 떠난다’는 식의 낭만적 명분으로 포장됐고 올해 2월 이미 예고된 일이지만, 자신이 일군 ‘아마존 제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 미리 고육책을 꺼내 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보기술(IT) 분야 거대 기업들의 독점 행위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유럽에 이어 미국에서까지 본격화하고, 아마존이 대표적 규제 대상으로 지목된 데 따른 결과라는 얘기다.
베이조스 퇴임 전날인 4일,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이조스가 사업적 또는 개인적으로 건설한 제국의 면면을 소개했다. 일단 광대한 사업 영역이다. 시장 조사업체 이마케터에 따르면 아마존은 온라인 소매 시장의 41%를 장악하고 있다. 이젠 책만 파는 게 아니다. 안 파는 물건이 없을 지경이다.
미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도 알파벳(구글의 모회사)과 페이스북에 이어 3위 사업자로 성장했다. 시장 개척에 일조하고 업계 1위에까지 오른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 부문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영업이익은 아마존 전체의 60%에 이른다. 발을 들이는 사업마다 시장을 집어삼키는 아마존의 ‘식욕’에 대한 공포는 ‘아마존드(amazoned·아마존에 의해 무너지다)’라는 신조어까지 낳았다.
인력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실업률이 치솟던 지난해 아마존의 전 세계 신규 채용 직원 수는 50만 명이 넘는다. 현재 95만 명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미국 내에선 수년 안에 현 최대 고용주 월마트를 추월할 것으로 점쳐진다.
엔터테인먼트도 빼놓을 수 없는 업종이다. 2010년 ‘아마존 스튜디오’를 설립, 영화 제작에 뛰어든 아마존은 아카데미상,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하는 등 큰 성과를 냈다. 영화 ‘007’ 시리즈 제작사로 유명한 MGM 인수도 추진 중이다. 끝없는 영토 확장의 결과, 아마존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시가총액 기준 세계 3위 기업이 됐다.
아마존 제국의 ‘황제’ 베이조스는 세계 최고 부호 자리에도 올랐다. 현재 그의 재산은 2,000억 달러(약 226조 원)가 넘는다. 3억 달러(3,393억 원)를 투자해 아마존 본사가 있는 시애틀 외에도 로스앤젤레스, 워싱턴, 뉴욕 등 미 곳곳에 저택을 장만한 건 놀랄 일이 아니다. 19명까지 탈 수 있는 전용 여객기, 헬기 착륙장이 있는 127m 길이의 요트도 그는 갖고 있다.
베이조스가 ‘인생 2막’을 꿈꾸는 것 역시 막대한 재산 덕이다.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앞으로 우주탐사, 기후변화 대처에 초점을 맞춘 자선 사업 등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달 20일엔 자신이 설립한 우주탐사 기업 ‘블루오리진’의 첫 우주 관광 로켓 ‘뉴 셰퍼드’에 직접 탑승해 우주여행을 다녀올 예정이다.
아마존에 생긴 베이조스의 공백은 앤디 재시(53) AWS CEO가 메운다. 지난달 30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아마존 창립 3년 뒤인 1997년 합류한 재시는 베이조스처럼 생각하고 그의 아이디어에 도전하도록 훈련받은 ‘지적 스파링 파트너’였다. 현재 아마존의 ‘캐시카우’(돈줄) 역할을 하는 AWS 사업을 주도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FT는 재시에 대해 “베이조스 같은 선지자 유형은 아니지만 디테일에 강하고 사실에 입각해 논쟁하는 유능한 관리자”라고 세평을 전했다. 1월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의 규제 환경은 갈수록 아마존 같은 IT 공룡들에 불리해지고 있다. 아마존 리더십의 교체 배경엔 탐욕스러운 자본주의 화신 이미지의 리더보다 반독점 규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안정된 위기 관리형 리더가 필요한 시기라는 아마존 안팎의 문제의식이 있었다는 게 FT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