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전 10시쯤 서울 은평구 D빌라 앞에 설치된 재활용품 분리수거함 앞에 형광색 조끼를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빌라 입주민들이 재활용품을 규정에 맞게끔 배출하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맡은 '자원관리도우미' A씨였다. 평일 오전이라 한적한 주택가에서 텅 빈 수거함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낯선 듯 몇몇 행인은 흘끔거렸지만, A씨는 "이른 시간이라 그런데, 이따 (주민이)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오면 분리를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다른 빌라 앞에는 재활용품이 잔뜩 쌓여 있었지만 자원관리도우미는 없었다.
아파트나 주택가에서 올바른 재활용품 분리 배출을 돕기 위해 자원관리도우미가 전국적으로 배치됐지만 정책 효과를 체감하기엔 아직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우미 활동 시간이 재활용품 배출 시간대와 맞지 않거나, 도우미가 주민을 적극적으로 계도할 권한이 없는 점은 대표적 개선 과제로 꼽힌다.
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환경부는 지난달 14일부터 전국 168개 지방자치단체의 공동·단독주택 재활용품 수거 거점에 총 8,400명 규모의 자원관리도우미를 배치했다. 재활용품 분리 배출 기준이 모호한 데다 주거 지역은 수거함 관리 책임이 명확하지 않아 재활용품과 일반쓰레기가 뒤섞이는 일이 잦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지자체에 직접 고용돼 월 80여만 원의 급여를 받는 자원관리도우미는 지자체에 직접 고용돼 올바른 분리배출법을 안내하고 재활용품을 사전 선별하는 업무를 맡는다.
하지만 막상 자원관리도우미 활동 지역에선 "별다른 변화를 느낄 수 없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일부 구역은 정책 효과를 내기 위한 기본 요건인 '안정적 인력 배치'부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 L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원 송시향(72)씨는 "자원관리도우미라면 지난해 몇 번 왔을 뿐 올해는 통 못 봤다"며 "국물 묻은 비닐 등 잘못 배출된 쓰레기를 일일이 분리하는 건 여전히 경비원 몫"이라고 말했다.
도우미 근무 시간이 재활용품이 주로 배출되는 시간과 맞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은평구 불광동 H아파트 경비원 B씨는 "우리 아파트 재활용품 수거일은 주말이라 자원관리도우미가 업무하러 나오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G아파트 경비원 김모(70)씨 역시 "입주민들은 퇴근 후 저녁시간대나 아침 출근시간대에 분리 배출을 많이 하는 터라, 자원관리도우미가 오는 낮시간대는 사실상 한가하다"고 지적했다. 자원관리도우미는 주 5일 출근, 하루 4시간 근무가 원칙이다.
자원관리도우미가 있더라도 수거 현장이 제대로 관리되리란 보장은 없다. 주민들이 규정에 어긋나게 재활용품을 분리 배출하더라도 도우미가 이를 실질적으로 제재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연립주택・빌라 밀집 지역인 은평구 응암3동이 근무지인 자원관리도우미 C씨는 "수거함 앞을 도우미가 지키고 있어도 시민들이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단독주택 지역 자원관리도우미인 김상준(59)씨와 조영만(68)씨도 “도우미가 없을 때보다 수거 상황이 많이 좋아졌지만 주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원관리도우미 제도가 현장에서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주민 홍보와 도우미 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민이만드는생활정책연구원' 부설 쓰레기센터 이동학 대표는 "재활용품 분리 배출 문제를 주민들의 선의에만 기대면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더 많은 시민이 자원관리도우미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도록 소통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 대표는 이어 "재활용품 보증금 제도를 확대하는 등 제도 개선을 병행해 올바른 분리 배출 유인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