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최재형, '배신자 프레임' 넘을까… 대권 향한 배신의 정치사

입력
2021.07.04 09:30
역대 대통령들 모두 겪은 배신의 정치 
①이회창-YS ②정동영-盧 ③유승민-朴
스타 정치인 됐지만…"당내 갈등 불러" 비판도

"최재형 감사원장은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 (문재인 대통령,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사의 표명한 지난달 28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 전 원장의 대선 출마는 쿠데타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바야흐로 배신의 계절인가.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하게 돼 있다."(정청래 민주당 의원,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차기 대권 도전과 동시에 거센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최 전 원장은 지난달 28일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본인은 똑부러지게 앞으로의 행보를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윤 전 총장과 같은 길을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죠. 문 대통령을 포함한 여권 인사들은 연이어 최 전 원장에게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죠. 그러면서 나온 게 바로 '배신자 프레임'입니다.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은 권력 기관을 자신의 정치에 이용했다는 논란과 함께 현 정부와 가장 대척점에 섰다는 공통분모를 갖게 됐죠. 다만 이런 이유로 곳곳에서 공격을 받게 됐고, 정치 인생 시작부터 배신자 덫에 걸릴 부담을 안고 가게 됐습니다.

같은 진영인 야권마저 배신자라고 꼬집을 정도입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19일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도 자기가 데리고 있던 인사들이 야당에 기웃거리니 참 착잡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정치권에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며 일어나는 배신과 갈등은 되풀이됩니다. 대선 같은 주요 선거 때면 어김없이 등장한다고 볼 수 있죠.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문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들 모두 겪은 일입니다.

①이회창, "YS, 나가라"…YS "신의 저버린 이회창"

김영삼 전 대통령(YS)에게 배신의 상처를 안긴 건 이회창 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총재였습니다. 이 전 총재는 김영삼 정부에서 요직을 거치며 정치력을 키워 왔는데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1993년에 감사원장을 지냈고, 국무총리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 전 총재가 김 전 대통령에게 척을 진 건 김 전 대통령 임기 말이자 대선 후보였던 시절인 1997년 10월입니다. 그는 당시 신한국당(현 국민의힘) 총재였는데요. 당시 야당 대표였던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비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해 정부의 수사 유보 결정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김 전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합니다.

청와대는 즉각 이 전 총재의 요구를 거부했고, 당내 김 전 대통령 측인 비주류계는 이 전 총재의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반발했습니다. 이를 두고 신한국당 분당 위기설까지 퍼졌죠.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이 전 총리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죠. 청와대를 나온 뒤에도 이 전 총재에 대한 앙금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이 전 총재가 두 번째 대권 도전을 한 2001년 12월 김 전 대통령은 이 전 총재에 대해 "한번 신의를 저버린 사람은 국민을 또다시 배신할 것"이라며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고 무거운 한방을 날립니다.

②소장파 '천신정', 세 아들 비리에 DJ 겨냥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진영 내 소장파로 불렸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의원)'으로 인해 수난을 겪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임기 후반 세 아들인 홍일·홍업·홍걸, 이른바 '홍삼트리오'가 줄줄이 구속되면서 압박을 받았는데요.

이때 재선그룹의 간판이었던 천신정은 정풍 운동을 들고나왔습니다. 당정 쇄신은 물론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동교동계의 좌장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 후퇴를 요구했죠. 결국 권 최고위원은 모든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일로 2002년 5월에 탈당합니다. 이전 대통령들보다 빨리 탈당해 주목을 받았죠. 당시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후보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였는데, 당시 노 후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③정동영, 2002년 대선 전후로 盧와 갈라서

천신정은 노 전 대통령 임기 말에도 청와대와 대립했는데요. 2007년 대선을 치러야 하는 여당이 인기가 바닥이었던 노 전 대통령과 선을 그으려고 했죠.

당시 '노무현의 황태자'로 불렸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노 전 대통령과 여당의 결별에 앞장섰습니다.

정 전 의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는데요. 2003년 2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대신해 다보스포럼에 특사 자격으로 참석했고, 2004년에는 통일부 장관, 2006년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았죠.

하지만 정 전 의장의 모진 공세에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은 깊어졌습니다. 정 전 의장은 비노무현계와 손을 잡고 당을 탈당,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하며 대선 후보로 나섭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4주년을 앞둔 2007년 2월 압박에 못 이겨 탈당을 선언했는데, 이 자리에서 "노무현 때문에 표 다 떨어졌다고 하는데, 지금 나간다고 떨어진 표가 다시 돌아오겠느냐"며 정 전 의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냅니다.


④친박계 학살 주도한 MB, 친이계 공격으로 되갚은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보수 진영이 집권한 9년 동안 갈등을 반복하며 지난한 계파 싸움을 벌였죠.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이 대결한 한나라당 17대 대선 후보 경선은 본선보다 뜨거운 경선으로 불렸고, 네거티브 대결은 극에 달했습니다.

두 사람의 갈등은 18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폭발했는데요. 당시 공천은 친이명박계가 주도했는데, 친박근혜계 의원들을 대거 떨어뜨려 '친박 학살'로 불렸죠. 4년 뒤 19대 총선 공천에선 당을 장악한 친박계는 '친이 학살'로 되갚아줍니다.

친박계가 공천에서 줄줄이 낙마한 2008년 3월 초 박 전 대통령은 칩거에 들어가며 집단 탈당 분위기를 띄웁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이 믿으라고 해서 신뢰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않았죠.

당시 공천을 못 받은 친박계는 친박연대를 창당했고, 한솥밥을 먹었던 친이계와 격돌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총선 이후인 2008년 4월 14일 한나라당 내분 사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여는데, "친박계의 복당 문제는 당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하며 친박계를 향해 경고합니다.

4월 22일에 열린 18대 총선 당선자 초청 청와대 부부 동반 만찬에 박 전 대통령은 불참했는데요.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 사이의 나쁜 감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줬죠.

⑤유승민, '배신의 정치' 낙인…동전의 양면 된 정치 인생

배신의 정치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유승민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사이의 갈등이 대표적입니다. 박 전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유 전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을 정도였으니 말이죠.

유 전 원내대표는 친박계를 대표하는 정치인이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당대표를 지낼 때 비서실장을 맡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습니다. 유 전 원내대표가 보수의 텃밭인 대구에 뿌리 내리게 된 것도 박 전 대통령 덕분이었죠.

그러나 유 전 원내대표가 집권당 원내대표가 된 뒤 정부와 차별화에 나서면서 두 사람은 갈라서게 됩니다.

유 전 원내대표는 2015년 4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로 여의도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습니다.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이 박수를 친 연설이었죠. 그러나 박 전 대통령과의 갈등은 점차 커지기 시작했죠.

박 전 대통령이 유 전 원내대표에게 배신의 정치란 주홍글씨를 새긴 건 2015년 6월 국회가 정부 시행령 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 처리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유 전 원내대표는 당시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해 주기로 합의했는데요. 청와대는 격분했고, 박 전 대통령은 이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합니다.

박 전 대통령은 6월 25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정치적으로 선거 수단으로 삼아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발언합니다.

유 전 원내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그가 심판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콕 집은 것이죠.

박 전 대통령의 배신자 발언 이후 친박계는 의원 총회를 소집해 유 전 원내대표 사퇴 권고를 결정합니다. 집권 여당이 자당의 원내대표를 축출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데요.

유 전 원내대표는 결국 그해 7월 중순 원내대표에서 물러납니다. 다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며 박 전 대통령을 향해 뼈 있는 말을 남깁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이 일로 야권의 대선 주자로 발돋움하게 됐지만, 당내 갈등의 중심에 서며 고립되기도 했죠.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유 전 원내대표의 배신자 꼬리표 떼기는 여전히 그의 정치적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류호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