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소재 영어학원 원어민 강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의 여파가 경기 부천·고양·의정부 영어학원 집단감염으로 확산하면서 학부모들은 우려를 넘어 원어민 강사들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학원 측은 "원어민 강사의 동선을 강제로 제한할 수는 없다"며 "우리도 난처한 입장"이라고 호소한다. 문화 차이로 인해 강사들이 어떻게 인식할지 몰라 '조심하자'는 권고도 꺼내기 조심스럽다며 울상을 짓는다.
29일 오후 3시까지 어학원 관련 누적 확진자 수는 총 162명이다. 각각 다른 학원에서 근무하는 원어민 강사 6명이 19일 서울 마포구 한 주점을 방문한 뒤 22일 성남 원어민 강사 A씨를 시작으로 확진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방역 당국은 전날 "6명이 예정된 모임을 했는지, 단순히 현장을 방문했다가 만났는지는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주점이 감염에 취약한 3밀(밀집·밀접·밀폐) 환경일 가능성이 크고, 음식을 섭취하며 대화하느라 마스크 착용이 미흡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원어민 교사들이 방역수칙을 어겼을 가능성에 더해 최초 확진자 A씨와 접촉한 또다른 원어민 강사 B씨가 검사를 받지 않았는데도 "음성으로 판정받았다"고 학원에 거짓말한 사실도 드러났다. B씨는 자가격리 통보를 받고도 개인적인 업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학부모들은 온라인상에서 "일부 강사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피해는 학생들이 본다"며 격분하고 있다.
의정부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은 "확진된 아이들이 얼마나 낯설고 두려울까"라며 "확진된 강사들이 완치될 때까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치료 및 격리 비용을 내는 게 너무 아깝고 화가 난다"고 했다.
그는 "(방역수칙을 어긴 경우) 구상권을 청구해 받을 것을 다 받고 추방시키고 입국 금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교육 정보 커뮤니티의 이용자는 "확진된 원어민 강사 중 한 명이 담임이라 아이가 자가격리 중"이라며 "다른 아이들이 확진되는 걸 보니 너무 마음 아프고 속상해서 다시는 원어민 강사가 있는 학원은 못 보내지 싶다"고 혐오 정서를 드러내기도 했다.
"마스크도 끼고 있었을 텐데, 학원은 도대체 방역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는 문제 제기도 나오지만, 학원 측은 "우리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라고 말한다. 강사 개인의 사생활을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다, '방역수칙을 지키자'는 권유가 개인의 자유·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될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제2외국어 학원 관계자는 "우리는 지방에 다녀온 강사들에게 선제 검사를 권고하고 있는데 아직까진 큰 반발은 없었다"며 "다만 올해 초 서울시가 외국인 노동자 강제 선별검사를 지시했다가 구설에 올랐을 때 우리 강사들도 '차별'이라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했다"고 전했다.
고양시의 영어학원 관계자는 "이번 집단감염과 비슷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원어민 강사들에게 '학부모들의 우려가 크다'고 언질은 준다"면서도 "하지만 그 이상의 얘기는 꺼내기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백신 접종 권고'를 어떻게 꺼낼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합법적으로 입국해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은 우리 국민과 동일한 기준으로 백신을 접종할 수 있다. 따라서 비교적 젊은 연령대(40대 이하)인 원어민 강사들은 8월부터 본격적으로 접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방송인 전담 소속사 파이브스톤즈이엔티 한재성 대표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혹시나 방송 출연에 지장을 받지 않으려면 백신을 맞도록 권유를 해야 할 것 같다"면서도 "소속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나중에 갈등이나 실랑이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소속 연예인 대부분이 20, 30대"라면서 "어학원도 사정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