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처음으로 나들이한 문재인 대통령의 성과는 ‘백신 외교’로 요약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선진국 모임인 G7 정상들 앞에서 “한국이 백신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의 주춧돌을 자임했다. 백신 리더십 확보를 고리로 한국의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꾀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것이다.
문 대통령은 G7 행사 시작부터 백신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보건’을 주제로 열린 G7 확대정상회의 첫 회의에 참석해 “한국이 보유한 대량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역량을 기반으로 글로벌 백신 허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서 “미국뿐 아니라 다른 G7 국가들과 백신 파트너십을 모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한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백신 파트너십’을 G7으로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문 대통령은 G7 정상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백신 문제를 화두로 꺼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는 “백신 개발 선도국인 독일과 생산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한국이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설득했다. 이에 메르켈 총리는 “독일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술을 보유한 백신 회사들과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독일 백신 제약업체인 바이오앤테크, 큐어백 등과의 협업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문 대통령은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우르줄라 폰데이라이엔 집행위원장에게도 “백신 개발을 선도하는 유럽의 능력과 한국의 우수한 생산능력을 결합해 생산 거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파스칼 소리오 아스트라제네카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를 만나서는 “원활한 글로벌 백신 공급을 위해 한국의 생산능력을 활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이 정상급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백신 생산능력을 부각한 건 국내외 여론을 두루 감안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백신 수급이 불안하다”는 국내 비판 목소리를 상쇄시키고, 대외적으론 케이(K)방역에 이은 백신 허브의 위상을 공고히 해 코로나19 대응 선도국의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키겠다는 의도다. 그는 글로벌 백신 분배 협의체인 ‘코백스 선구매공약매커니즘’에 올해와 내년 각각 1억 달러(약 1,116억 원) 지원 계획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도 지난달 한미정상회담 이후 3주 만에 재회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문 대통령이 오셔서 모든 게 잘될 것 같다”고 덕담을 건네자, 문 대통령도 “미국이 보낸 얀센 백신 예약이 18시간 만에 마감됐다. 한국에서 큰 호응이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정상들은 이날 마스크와 칸막이 없이 회의에 임해 대규모 백신 접종에 따른 코로나19 종식 의지를 내비쳤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G7 참석에 고무된 분위기다. 한국은 G7 회원국은 아니지만 올해 호주,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초청국 자격으로 회담에 참여했다. 청와대는 “한국이 글로벌 리더인 G7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의미”라고 긍정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13일에는 ‘열린사회와 경제’를 주제로 열린 G7 확대정상회의 두 번째 세션에 참여했다. 문 대통령과 G7 정상들은 '공정 무역과 개방 경제 촉진'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G7를 주도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와 유럽에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에 견제구를 날릴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다만 G7 기간 중국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G7 참석을 통한 국격 상승 기회는 충분히 활용하되, 중국을 직접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콘월=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