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미술관, 수도권은 안된다" 청원...미술계, 지자체 유치 경쟁 비판

입력
2021.06.09 15:00
'이건희 미술관' 건립, 지자체 간 유치 경쟁 벌어져
"수도권 건립, 문화·일자리·경제 양극화 부추겨"
미술계 "미술관 필요하지만, 건립보다 순회 전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기증한 미술 작품을 전시할 일명 '이건희 미술관' 건립을 두고 "수도권 건립을 극구 반대한다"는 청와대 청원글이 등장했다. 수도권 내 건립은 지역 양극화만 부추긴다는 이유에서다.

미술계는 미술관 건립의 필요성에는 찬성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이 유치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 대해서는 "정치 공학적 요구"라며 비판 어린 시선을 보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8일 '코로나 시대! 이건희 컬렉션 미술관, 수도권 건립을 극구 반대한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의 작성자는 "또 서울, 또 수도권에 이건희 컬렉션을 위한 미술관 건립 정책이 검토되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문화시설의 분산 정책은 분명히 요구되고 있다"고 썼다.

그는 이어 "전국 도시들의 유치 경쟁을 과열시키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이라며 "수도권의 이건희 컬렉션 미술관 건립은 인구집중 현상과 전국의 문화 격차만 벌어지고, 대한민국의 극심한 문제인 문화 양극화, 일자리 양극화, 경제 양극화를 한껏 부추기는 악영향만 낳을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건희 컬렉션을 위한 미술관 수도권 건립은 그 어떤 이유에서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9일 오후 2시 현재 이 청원글은 200명 이상의 동의를 얻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글이 올라온 지 한 달 이내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정부 또는 청와대의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정부는 이 회장의 유족이 기증한 2만3,000여 점의 미술품 전시를 위해 별도 공간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일부 지자체들이 유치전에 뛰어들어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 게시판에도 인천, 경남 창원, 부산 등에 이건희 미술관을 건립해달라는 청원글이 여럿 존재한다. 특히 지난 4일 게재된 '인왕제색도의 겸재정선미술관 유치를 청원한다'는 글은 현재까지 6,000명 이상의 동의를 얻고 있다.

미술계, '이건희 미술관' 건립 필요하지만...

미술계도 미술관 건립 필요성에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9일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5, 6일 미술계 전문가(148명)들을 대상으로 '이건희 컬렉션 활용 방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 중 '국립근대미술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90%로 나타났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품과 합해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하자'는 의견은 78.4%로 집계됐다. 그 이유로는 '한국사에서 상실된 근대사의 복원을 위해서'가 75.3%로 가장 많았고, '기증자의 뜻을 존중하는 차원(24%)'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지자체들의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지자체의 과도한 이건희 미술관 건립 요구는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지자체들의 정치 공학적 요구(51.4%)'라는 의견이다.

그러면서 미술계는 지자체의 이건희 미술관 건립이 아닌 '국립중앙박물관 분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및 지방 공립미술관들이 협업해 순회 전시를 하면 된다(58.9%)'는 의견을 보였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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