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음악방송 듣고 소풍 가자 

입력
2021.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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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학교에서 ‘학생폭력’ 업무를 맡았다. 법에서 정한 이름은 학교폭력이지만 학교를 폭력의 온상처럼 보이게 만든 이 말부터 바꾸자고 일부러 이렇게 부른다. “학생을 대상으로 한 ~ 폭력”이니 학생폭력으로 부르는 게 맞기도 하다. 하여튼 학교를 법정으로 만들어 놓은 못마땅한 법이지만 법에서 정한 의무는 있으니 누군가는 또 그 일을 해야 한다. 이럴 때면 다른 선생님들 부담도 덜어주고,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내가 하면 꼭 해야 할 일과 대충 해도 될 일을 구분해서 요령껏 할 수 있으니 자원한다.

그런데 학생폭력 업무를 해오면서 승진가산점은 한 번도 신청하지 않았다. 학생폭력을 막겠다며 하는 발상이 더 폭력적이라서 이에 저항하는 거부투쟁이다. 승진가산점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신청서를 작성해서 증빙자료를 내게 한다. 아이들 상도 이렇게는 안 준다. 낸다고 다 주는 것도 아니고 학교 교사들 중에서 40% 이내에서만 준다. 교사의 승진가산점이 다 이런 식이다. 그 점수들을 쫓다 교사로서 내 정체성에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멀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산다고 이 점수를 챙기는 교사들을 시기하지도 않는다.

올 초에 학교를 옮기니 학생폭력 업무는 다른 교사가 맡고 있었다. 평소에도 남는 업무를 하는 성격인데 막 전입하는 학교에서 내가 업무를 고를 수 있는 상황은 더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고를 수 있는 게 있었다. 특별히 관심을 쏟아야만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모두 힘들어하는 상황이라 그 학년 담임을 자원했다. 승진점수 대신에 인간점수를 딸 수 있는 매력적인 일이기도 했다.

이렇게 담임을 맡게 된 우리 반 아이들 몇몇은 확실히 달랐다. 학생폭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났고, 소년부 재판을 받는 아이도 있었다. 이 아이들을 훈계하는 게 일상이다 보니 내 삶도 고달팠다. 평화로운 아침을 열어가려고 음악을 들려줘도 아이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사연을 받아 신청곡을 틀어주면 좋을 것 같아 '오늘 아침, 같이 듣고 싶은 노래'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내가 PD 겸 아나운서가 되어 4월부터 교실음악방송을 시작했다. 이건 반응이 좋았다. 내 잔소리는 확실히 줄었고, 아이들 지각도 줄었다.

4월 한 달을 이렇게 보내고 5월부터는 엽서 뒷면에 보호자 신청곡과 사연도 적어달라고 했다. 어떤 노래를 신청할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볼 것이라는 기대로 제안했는데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이렇게 노래 두 곡과 사연으로 수업 시작 10분 전 아침방송을 하니 학급 분위기도 이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튀는 아이들에 집중하느라 보지 못했던 아이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과도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6월부터는 점심시간에 노래를 신청한 아이와 소풍을 간다.

급식을 먹고 나면 교문 앞 분식점 ‘소풍’에서 슬러시 두 개를 사서 넝쿨장미가 우거진 학교 담장을 따라 둘이 걷는다. 걷다가 정자에 앉아 두 다리를 쭉 뻗고 시원한 슬러시를 마시며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 세 가지를 묻고 답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마스크를 벗은 서로의 얼굴도 본다.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매일 소풍이나 다니니 학교 밖에서는 “선생들이 하는 게 뭐가 있냐”는 말이나 듣나 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연 많은 1학기 소풍 끝내는 날 그래도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 얘들아, 소풍 가자.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