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기원

입력
2021.06.02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코로나19의 최초 발병 메커니즘을 파악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조사단이 지난 1월 중국 우한을 방문했다. 그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에서 WHO는 코로나의 기원을 둘러싼 네 가지 가설의 신빙성을 평가했다.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은 이미 널리 믿는 대로 박쥐 바이러스가 중간숙주를 거쳐 인간에게 왔다는 가설이다. 박쥐 바이러스가 바로 사람에게 옮겨졌을 가능성은 높은 정도이고, 중국 정부 주장처럼 냉동식품을 통해 해외에서 왔을 확률도 없지는 않다고 봤다.

□ 그러나 발병 초기부터 논란이던 우한 연구소 유출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판단했다. 연구소 유출설은 주로 트럼프 미국 정부에서 제기했지만 과학적인 증거가 부족한 일종의 우파 음모론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다. 수그러든 줄 알았던 이 가설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이 정부 공식 조사에 착수한 데 이어 영국 등의 정보기관에서도 사실일 수 있다고 보고 관련 자료 수집에 나섰다. 일부 감염병 권위자들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 코로나 확산 직후부터 연구소 유출 주장을 해온 대표적인 인물은 홍콩대 옌리멍 박사다. 발병 직후 중국 정부 의뢰로 관련 조사를 했다며 그는 인민해방군이 생물학 무기 개발 중 바이러스가 유출됐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9월 그 증거를 담았다는 논문도 발표했지만 형식이나 주장에 허점이 많아 과학계에서는 외면받았다. 트위터는 그의 계정을 차단했고 페이스북도 그의 주장을 담은 정보를 삭제해왔다.

□ 최근 페이스북이 옌리멍의 주장이 담긴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기로 한 것도 연구소 유출설에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중국이 협조하지 않는 한 이를 증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 이를 적극 조사해 밝힐 책임이 큰데도 중국은 WHO 조사에 수동적이었고 해외 유입 주장만 반복하며 책임을 벗으려 한다. 지금까지 코로나19 사망자가 355만 명을 넘었다. 발생 원인을 알지 못하면 6, 7년 뒤 대유행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류의 위기 앞에서 중국은 좀 더 솔직하고 겸손해야 한다.

김범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