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박사방’을 통해 아동·청소년 등 피해자들의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고, 범죄수익을 은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6)에게 항소심에서 징역 42년이 선고됐다. 1심의 징역 45년보다는 3년의 형량이 줄어든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박사방 범행으로 피해자들의 삶은 완전히 파괴됐다”며 엄벌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병합심리 등을 이유로 감형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 문광섭)는 1일 조씨 등 박사방 일당 6명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조씨에게 총 45년의 징역형을 선고한 1심을 깨고, 그에게 징역 42년을 선고했다. 10년간 신상정보 공개와 30년간 위치추적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범죄수익 1억800만 원의 추징도 함께 명령했다. 앞서 조씨는 1심에서 박사방을 조직하고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징역 40년을, 이와 별도로 범죄수익 1억여 원을 은닉한 혐의로는 올해 2월 징역 5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항소심은 두 사건을 병합해 재판을 진행했다.
이날 조씨 형량이 줄어든 핵심 사유도 바로 이 ‘병합심리’였다. 한국 형법 체계에서 1심에서 개별 판단이 나온 사건들이 항소심에서 합쳐져 경합범으로 처벌될 땐, 원심 형량의 단순 합산보다는 다소 낮은 형이 선고되는 게 일반적이다. 2심 재판부는 또, “조씨가 최근 또 다른 혐의로 추가기소돼, 향후 형이 별도로 부과될 가능성이 있는 점도 양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과거 성착취물 촬영 과정에서 피해자 3명을 강제추행한 혐의가 추가로 입증돼 지난달 또다시 기소됐다.
재판부는 법리적 이유로 감형을 하면서도,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과 사회적 악영향에 대해선 피고인들을 엄히 꾸짖었다. 재판부는 “가해자들은 범죄에 동참하면서도 오락거리 즐기듯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피해자들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노예로 부르며 성적 대상화를 하며 이익추구 대상으로 삼았다”고 질타했다. 이어 “디지털 성범죄는 n번방 이후 단순한 개인의 악성 범행에서 조직범죄로 진화했고, 제2, 제3의 박사방 등 모방범죄 우려도 있어 예방적 차원에서 엄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사방이 ‘범죄집단’에 해당한다는 1심 판단도 그대로 유지됐다. 항소심은 그러면서 조씨와 함께 구속기소된 박사방 일당 5명에게도 전부 실형을 선고했다. 성착취물을 반복 유포한 ‘태평양’ 이모(17)군에겐 원심과 같이 미성년자 법정 최고형인 장기 10년, 단기 5년형이 선고됐다. 박사방 유료회원 중 처음으로 범죄단체가입 혐의가 적용된 장모(42)씨와 임모(35)씨도 1심과 같이 징역 7년과 징역 8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다만 조씨에게 자신이 스토킹하던 고교 담임교사의 딸 청부살해를 요청했던 ‘도널드푸틴’ 강모(25)씨의 경우, 병합심리 탓에 원심보다 징역 2월이 줄어든 징역 13년이 선고됐다. 전직 거제시청 공무원인 ‘랄로’ 천모(30)씨도 항소이유가 일부 받아들여져 징역 15년에서 13년으로 감형 판결을 받았다. 이날 선고가 열린 서울법원종합청사 417호 대법정은 취재진과 피해자 연대를 위해 방청을 온 시민들로 80여 석이 가득 들어찼다.
‘텔레그램 성착취 대응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선고 직후 “아쉬운 판결 앞에 ‘가해자의 형벌도 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한 피해자의 말이 생각난다”며 감형에 아쉬움을 표했다. 공대위 측은 “경찰은 n번방과 관련해 1,000여 명을 수사했고, 단속된 이들 중 149명은 군인·경찰·교사 등 공무원으로 드러났다”며 “가해자들이 유별난 괴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옆의 누군가이며, 조주빈 등 주요 운영진은 그 일부를 대표하는 인물들일 뿐”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