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으로 확산 '칠곡할매글꼴', '한글'에도 탑재

입력
2021.05.27 13:42
칠곡 성인문해학교서 한글 익힌 할머니들이
권안자체, 이원순체, 추유을체 등 만들어내
명함·현수막에서 한컴오피스에도 기본 탑재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할머니들이 경북 칠곡군이 운영한 성인문해교실에서 뒤늦게 한글을 깨쳤다. 그냥 한글을 배우는 것으로 머무르지 않고 시와 산문을 썼고, 전시회까지 했다. 이들이 쓴 글씨로 새로운 서체, 폰트가 만들어졌다. '칠곡할매글꼴'이다.

칠곡군은 지난해 12월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한글을 배운 할머니 400명 중 개성있고 아름다운 글씨체 5개를 선정해 글꼴로 제작했다. 글씨체마다 칠곡할매 권안자체, 이원순체, 추유을체, 김영분체, 이종희체로 할머니들의 이름을 붙였다. 한글사랑운동을 펼쳐온 방송인 출신 역사학자 정재환 성균관대 교수가 칠곡할매글꼴 홍보 대사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문해교실을 운영한 칠곡군 공무원들의 명함 등에 쓰이기 시작한 글꼴이 전국구 글꼴로 부상하고 있다. 칠곡할매글꼴로 만든 표구와 글꼴은 국립한글박물관에 연구보존되고, 오피스프로그램에도 기본 탑재됐다.

칠곡군 왜관읍에서 치킨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신혜경(39)씨는 배달 주문이 올 때마다 음식 상자에 칠곡할매글꼴로 쓴 감사의 글을 붙인다. 신씨는 "다른 글꼴보다 우리의 진심을 잘 담을 수 있고, 고객들의 반응도 좋다"고 말했다. 같은 지역에서 분식점을 하는 김인숙(54)씨 역시 "독특한 글씨체라 고객들이 한 번 더 유심히 보게 되는 것 같다"며 "지역 할머니들의 글꼴이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글과컴퓨터는 한컴오피스 프로그램에 칠곡할매글꼴을 정식 탑재했다. 경주 황리단길 경주공고는 경주공고는 칠곡할매 권안자체로 '지금 너의 모습을 가장 좋아해'라 적힌 가로 5m, 세로 10m의 대형 글판을 제작해 상설 전시하고 있고, 또 해병대교육훈련단이 있는 포항 오천읍에도 할머니들의 글꼴로 만든 입대 환영 현수막이 내걸렸다.

지역 공직자들도 칠곡할매글꼴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다섯 할머니들의 글씨체로 제작한 명함을 만들었고, 공무원들도 할머니들의 글씨체로 새롭게 명함을 만들어 내밀고있다.

최근 국립한글박물관은 칠곡할매글꼴로 제작한 표구와 글꼴이 담긴 USB를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심동섭 국립한글박물관장은 "칠곡할매글꼴은 정규 한글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가 남긴 문화 유산으로 한글이 걸어온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새 역사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백선기 군수는 "칠곡할매글꼴은 특별한 의미와 개성으로 한글 사용자들에게 또 다른 기쁨과 만족을 줄 것"이라며 "칠곡할머니들의 굴곡진 삶과 애환이 담겨 있는 칠곡할매글꼴을 많이 사랑해 달라"고 말했다.


칠곡=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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