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 강제 착륙' 처음 입 연 루카셴코, "나를 비난하지 말라" 궤변 일관

입력
2021.05.27 18:25
"기장 등과 논의해 비상 착륙" 변명만 늘어놔
EU 제재 시작, 벨라루스 항공기 민스크 회항

전대미문의 ‘민간여객기 강제착륙’을 지시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처음 입을 열었다. 하지만 테러 첩보 대응이라는 주장만 반복하며 궤변으로 일관했다. 독재자의 터무니 없는 변명에 국제사회는 벨라루스 항공기의 유럽 영공 운항을 제한하는 등 제재 수위를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벨라루스 국영 벨타통신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날 의회 연설에서 아일랜드 라이언에어 여객기를 강제로 착륙시킨 과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요지는 스위스 당국으로부터 여객기 내 폭발물 설치가 의심된다는 첩보를 받아 어쩔 수 없이 운항을 멈추게 했다는 것이다. 또 여객기 기장과 항공사, 도착지인 리투아니아 빌뉴스 공항과 논의한 만큼 불법 행위는 아니라고 강변했다.

자국 민스크 공항으로 여객기를 회항시킨 이유와 관련해선 “빌뉴스와 우크라이나 르포프ㆍ키예프, 폴란드 바르샤바 등 공항이 해당 여객기 착륙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벨라루스 공군 미그-29 전투기가 여객기 기장을 위협했다는 비판에도 자국민 보호 조치라고 둘러댔다. 결론적으로 “테러 여객기가 우리 국민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없어 취한 불가피한 조치이니 자신을 비난하지 말라”는 하소연이다.

벨라루스 당국은 사건 당일인 23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테러 위협을 강제 착륙 사유로 제시했으나, 탑승자 중 반(反)정부 언론인을 체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적 비난에 직면했다. 루카셴코는 이날 체포된 라만 프라타세비치와 러시아인 여자친구에 대해서도 “유혈 폭동을 모의했다”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궤변이 통할 리 없었다. 당장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는 자국 공항들은 여객기 비상 착륙 허가를 요청 받은 사실이 없었다면서 루카셴코의 주장을 일축했다. 서방의 압박도 더욱 커졌다.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별도 성명 내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사건 조사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벨라루스의 행태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서방과 벨라루스의 신경전은 자칫 ‘글로벌 항공대란’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이날 EU는 앞서 의결한대로 벨라루스 국적항공사 벨라비아의 유럽 영공 운항을 중단시켰다. 민스크에서 출발해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향하던 벨라비아 항공기는 프랑스 영공 진입 불가 통보를 받아 회항했고, 핀란드ㆍ체코행 항공편 등도 잇따라 중단됐다. 이에 반격하듯 벨라루스 편에 선 러시아는 프랑스 항공사 에어프랑스의 우회항로 요청을 거절했다. 에어프랑스에 따르면 이날 벨라루스 영공을 피해 모스크바로 향하려던 항공기가 러시아 당국의 우회항로 운항 승인을 받지 못해 연기됐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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