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픽] 글로벌 철강대란 부른 시진핑의 한마디

입력
2021.05.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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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박일근 논설위원이 살아 숨쉬는 우리 경제의 산업 현장과 부동산 시장을 직접 찾아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지난 17일 부산역에서 남구 감만1동 동국제강 부산공장으로 가는 길엔 대형 화물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부산항 제5부두에도 수출품을 가득 실은 컨테이너들이 산처럼 쌓여 선적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1년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위세를 떨칠 당시 듬성듬성 빈 곳이 많았던 것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이라는 게 현지인의 귀띔이다. 실제로 부산본부세관에 따르면 지난달 부산 수출 실적은 지난해 4월 대비 44%나 늘어난 13억 달러에 달했다. 적어도 부산항은 이미 코로나19를 극복했다.

제8부두와 감만부두 사이에 자리한 축구장 50여 개 크기의 동국제강 부산공장은 냉장고 등 가전제품과 건축 내외장재에 사용되는 컬러강판을 단일 규모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다. 최근 컬러강판은 그 수요가 폭발세다. 코로나19로 집콕이 늘면서 고급 가전과 인테리어 수요가 커진 데다 정부가 부동산 공급 대책에 박차를 가하며 건설 경기도 돌아섰다. 김민석 동국제강 부장은 “직원 870여 명이 4조 3교대로 24시간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지만 주문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며 “이전에는 주문 후 2주 정도면 제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두 달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컬러강판 주문 2달 대기... 증설 공사

컬러강판을 만드는 공정은 두루마리처럼 동그랗게 말린 무게 15톤의 열연강판(핫코일)에서 시작된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에서 가져온 핫코일을 상온에서 압연해 냉연강판으로 만들고 이를 다시 도금한 뒤 색을 입혀 컬러강판으로 가공한다. 먼저 핫코일을 풀어 컨베이어벨트처럼 흘러가는 라인에 끼워 넣은 뒤 염산으로 세척하고 위아래에서 눌러 얇게 펴는 연속산세압연 공정을 거친다. 이렇게 300m에 가까운 긴 설비를 통과하면 두께 3㎜ 핫코일은 0.5㎜의 냉연강판이 된다.

이후 아연이 녹아 있는 큰 항아리 속으로 잠수했다 나와 높이 48m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며 건조되면 부식되지 않는 도금강판 완성이다. 이제 남은 건 도장과 인쇄 작업. 전에는 도료를 스프레이로 뿌리는 분체 방식이었지만 요즘엔 롤에 음각을 한 뒤 인쇄하듯 찍는 디지털 프린팅 방식을 채택, 다양한 무늬와 질감을 만들 수 있다. 손으로 만져봐도 나무라고 착각할 정도의 강판, 가격은 4분의 1이지만 겉모습은 스테인리스와 구별이 안 되는 제품 등이 눈길을 끌었다.


총 8개의 생산라인에서 연간 75만톤의 컬러강판을 생산 중인 동국제강 부산공장은 고객들 수요가 몰리자 이미 1개 라인 증설 공사까지 진행 중이었다. 김선홍 부장은 “컬러강판 증설 공사가 마무리되는 7월부턴 10만톤을 추가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증설에도 공급난이 곧바로 해소되긴 힘들 전망이다. 해외 주문도 쇄도해 총 생산량 중 절반 안팎은 수출로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철광석 가격 90→230달러

컬러강판뿐 아니다. 사실 지금 철강업은 전체적으로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로 용광로처럼 펄펄 끓고 있다.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부터 뜨겁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중국 칭다오항 기준(CFR) 철광석 현물 가격은 톤당 237달러까지 치솟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1년 전엔 90달러대였다. 연초와 비교해도 30% 이상 급등했다. 기초 철강재인 핫코일 등 국내에서 유통되는 철강재 가격도 대부분 톤당 120만 원을 넘어서고 있다. 심지어 철근은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건설 공사 현장이 멈출 정도다. 연초 톤당 70만원이던 철근 가격은 최근 100만 원 선을 돌파했다. 13년 만이다.

이러한 철강대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말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화상 연설에서 2030년 전에 탄소배출량의 최고점을 기록한 뒤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다. 탄소중립이란 탄소를 배출한 만큼 이를 다시 나무를 심는 등의 방식으로 흡수해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걸 일컫는다. 연간 100억톤에 가까운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전 세계 배출량의 3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 탄소중립 목표를 제시한 건 처음이다.


시진핑 한마디에 철강 감산 시행

당시 시 주석의 발언은 코로나19로 중국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은 상태에서 큰 주목을 끌지 못했고 오히려 의심을 받았다. 시 주석이 중국에 부담이 되는 발표를 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중국발 초미세먼지와 기후변화 등에 대한 국제 사회의 압박, 점점 심해지는 대기오염에선 더는 살 수 없다는 국내의 반발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중요한 건 중국은 당이 결정하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나라란 점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올해를 탄소중립행동계획 원년으로 선언하고 탄소 배출이 가장 심한 제조업인 철강 부문(중국 탄소 배출의 15%)의 생산량부터 조절하고 나섰다.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150㎞ 떨어진 중국 최대 철강 생산지인 탕산시가 지난 3월 19일 23개 철강사에 최대 50% 감산을 지시하는 공문을 보낸 게 신호탄이다. 이튿날 탕산 지역 철강재 가격은 톤당 4,600위안(약 80만 원)까지 돌파하며 13년 만의 최고가를 기록했다. 최근 이곳의 공장 가동률은 60%대로 떨어졌다.


중국, 최대 철강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철강 생산량 감축이 시행되고 중국 내 철강 가격이 급등하자 중국 정부는 5월부터 합금강 분말과 스테인리스 강선 등 철강 제품 수출 시 수출 가격의 13%까지 돌려줬던 ‘증치세(부가가치세) 환급’을 완전히 폐지했다. 반면 조강과 선철, 무쇠의 수입 관세는 없앴다. 그동안 사실상 보조금까지 줘가며 철강 수출을 장려했던 정부가 180도 입장을 바꿔 지원을 중단하고 오히려 수입을 독려하고 나선 셈이다. 수출 대신 수입을 유도해 중국 내 철강 수요에 대응함으로써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의도다. 연간 전 세계 조강 생산량(약 20억톤)의 절반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이자 수출국인 중국이 갑자기 수입국으로 돌변하겠다는 셈이다. 글로벌 철강 공급난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의 이러한 행보엔 미중 패권 전쟁도 영향을 미쳤다. 철강의 주요 원료인 철광석은 호주와 브라질이 전 세계 수출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70%가 중국으로 간다. 그런데 중국 견제 성격이 큰 쿼드(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일원인 호주가 지난해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국제 조사를 요구하자 중국은 호주산 석탄의 수입을 막아 버렸다. 석탄은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들 때 사용된다. 중국은 가격 급등을 우려해 호주산 철광석 수입 금지까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선 이에 대한 우려로 철광석 가격이 급등세다. 더구나 2019년 3개의 댐이 붕괴되며 일부 철광석 광산 운영이 중단된 브라질도 아직 복구가 완전하지 못한 상태다. 철광석과 석탄 대신 고철(철스크랩)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또한 확보가 쉽지 않다. 일부 국가가 고철 수출을 금지하며 고철 확보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고철 가격은 톤당 40만 원 중반대로 치솟았다. 지난해는 20만 원대였다.


전 세계 인프라 투자에 철강 수요 급증

이처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반면 수요는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가 경기 부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다 이미 코로나19에서 벗어나고 있는 국가의 경제 회복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18.3%나 증가했다. 분기 기준 30년 만의 최고치다. 부동산 개발과 인프라 투자가 기여한 부분이 많은데, 모두 철강 수요와 밀접하다. 미 백악관도 4조 달러에 달하는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관심은 이제 글로벌 철강 공급난이 얼마나 지속될지로 옮겨가고 있다. 업계에선 철강가격 강세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이 우세하다. 탕산시의 감산에도 불구하고 아직 중국 전체 철강 생산량은 줄지 않은 상황이다. 철강 감산령이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고 실질적인 중국 철강 생산량이 줄면 그 후폭풍은 훨씬 거세질 수도 있다. 철광석 가격 상승이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만성적인 철강 공급 과잉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볼 수 없는 만큼 투기적 수요에 따른 단기 가격 급등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점검해야 할 관전 포인트는 몇 가지가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원 관계자는 “중국이 탄소배출 감축을 발표처럼 과감하게 시행할지, 중국의 철강 수요가 계속 증가할지가 관건”이라며 “철강재 가격이 급등하고 사재기가 심해지면 중국 정부가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후변화 문제와 탈탄소화 전환은 우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며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철강 생산 시설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만큼 연구·개발에 힘을 쏟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