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이선호' 막을 산안청 신설... 與 복잡해진 방정식에 고심

입력
2021.05.25 08:00

'산업안전보건본부냐, 산업안전보건청이냐, 권한 지방 공유냐.'

산업재해 조사와 예방을 전담할 정부 조직을 어떻게 개편할지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대형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전부터 산업안전과 관련한 독립된 행정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돼 왔다. 당정 간 기존 합의는 오는 7월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을 '산업안전보건본부'로 격상하고 2023년 '산업안전보건청(이후 산안청)'으로 승격하는 방안이다.

정부에선 현재 국회와 정부가 다음 정부의 조직 개편 내용을 결정하는 게 맞느냐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이재명 경기지사와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화두를 던진 '근로감독권 지방자치단체 공유' 문제까지 부상하면서 산안청 신설을 둘러싼 방정식이 복잡해지고 있다.

"2년 뒤 산안청 신설" vs "다음 정부 과제"

산안청 신설은 여권에서 지속적으로 거론돼온 산재 대책이다. 플랫폼 노동 등 새로운 노동 형태의 등장으로 산재 유형도 변화하는 현실을 따라잡기 위해서 영국의 보건안전청, 미국의 산업안전보건청과 같은 독립된 권한과 전문성을 갖춘 정부 조직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산안청 신설과 관련한 법안과 공약은 이미 마련돼 있다. 민주당에선 지난해 7월 김영주 의원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낙연 전 대표가 올해 1월 산안청 신설을 약속했다. 경기 평택항에서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이선호(23)씨 사건 이후인 지난 11일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산안청 설치에 속도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정의당에서는 이은주 의원이 3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힘을 싣고 있다.

그럼에도 산안청 신설 논의가 더딘 이유는 당정 간 의견이 매끄럽게 조율되지 않은 탓이다. 이 전 대표는 1월 "정부와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지만 정부 조직 관리를 담당하는 행정안전부는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2023년 1월 적용될 정부 조직 개편안을 정권 말인 지금 결정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산업재해예방 태스크포스(TF) 핵심 관계자는 24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다음 정부의 과제이기도 한 정부조직 개편을 지금 법안으로 의결하는 게 맞느냐는 이견이 있다. 지난 당정 협의 결과대로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논의는 더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근로감독권 지자체 공유"도 변수

이재명 지사가 제안하고 송영길 대표가 검토를 지시한 근로감독권 지자체 공유 문제도 교통 정리가 필요하다. 여태까지 당정은 산안청 소속 인력에게도 산재 현장 조사권을 부여해 산재 예방을 위한 행정력을 키우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한 TF 소속 의원은 "산안청 신설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해나가려는 기존 방향이 있는데, 지금 논의는 자칫 기관 간의 권한싸움으로 비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민주당 TF 내에선 근로감독권 지자체 공유와 산안청 신설 논의가 병행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근로감독권한을 갖춘 조직과 인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산재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윤준병 의원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산안청은 산안청대로 하고 지방에서는 역할을 알아서 하면서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지난해 7월 지자체도 고용노동부 장관의 위임을 받아 근로감독관을 둘 수 있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홍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