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손짓에 20조원 '최대 해외투자'로 화답한 삼성전자

입력
2021.05.22 08:57
4대 그룹, 44조원 대미 투자계획 공개
SK하이닉스도 美 'R&D' 거점 세운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20조 원을 투자해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는 방안을 확정했다. 삼성전자의 해외 단일 투자 규모로는 역대 최대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반도체 동맹' 구축에 힘을 쏟고 있는데, 삼성전자가 한 축을 담당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한미회담 계기 美 투자 확정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2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서 삼성전자, 현대차, SK, LG 등 한국 4대 그룹은 총 394억 달러(약 44조3,300억 원) 규모의 미국 투자계획을 공개했다.

우선 삼성전자는 미국 내 신규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 구축에 17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4대 그룹 대미 투자금의 절반을 차지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성장이 예상되는 파운드리 신규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삼성전자는 최근 정부의 K반도체 전략에 맞춰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는데,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 내 투자 계획도 확정한 것이다.

170억 달러(약 20조원)는 삼성전자의 해외 단일 투자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다만 삼성전자는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투자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17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좋은 소식이, 구체적인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틴에 최첨단 5나노 공장 짓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규 파운드리 후보지로 기존 파운드리 공장이 있는 텍사스주 오스틴시 외에 뉴욕주 제니시 카운티와 애리조나 피닉스 등 총 3곳을 검토해 왔다.

업계에선 오스틴시가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연초 오스틴시에 17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 증설 투자 조건으로 25년 동안 8억547만 달러(9,000억 원) 규모의 세금을 감면해 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현재 오스틴시에선 삼성전자가 요구하는 인센티브를 줘서라도 반드시 유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상당히 강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세부 인센티브 협상을 끝내면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밝힐 것"이라며 "미국이 측면 지원을 약속한 만큼 인센티브 협상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텍사스주가 과거 삼성전자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세울 때 도로를 구축해주는 등 가장 적극적이었다"며 "삼성전자로서도 이미 땅을 사둔 곳에 공장을 세우는 게 훨씬 유리한 만큼 오스틴시가 최종 낙점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조 원을 들여 5나노미터(nm) 중심의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를 지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해외에 5나노 공정의 초미세 파운드리 라인을 구축하는 건 처음이다. 5나노 공정은 현재 삼성전자가 상용화한 공정 중 가장 앞선 선단 공정이다. 미국의 기존 오스틴공장은 현재 14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美 최애 반도체 파트너 삼성전자·TSMC

미국이 천명한 '반도체 굴기'의 핵심은 '세계의 반도체 공장'으로 불렸던 과거 명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

출발점은 자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이다. 미국은 이미 정부와 의회가 '원팀'을 구성, 반도체 산업 육성책을 쏟아내고 있다. 막대한 보조금 지원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유도하겠다는 계산인데, 미국으로선 삼성전자와 TSMC가 첫손에 꼽히는 반도체 파트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모바일 프로세서,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은 현재 세계적으로 삼성전자와 TSMC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구애를 받고 있는 TSMC도 선물 보따리를 쏟아내고 있다. TSMC는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짓기로 한 공장을 기존 1곳(약 11조~13조 원)에서 6곳(40조5,000억 원) 으로 늘리기로 한 건 물론, 최근엔 투자금을 배 이상 늘려 3나노 반도체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외신까지 나왔다.

애초 TSMC까 잡은 미국 투자 규모는 100억~120억 달러(11조~13조 원)인데, 공장 규모를 6곳으로 늘리면 투자금은 360억 달러(40조5,000억 원)로 3배 이상 뛴다. 때문에 삼성전자 역시 추후 투자 규모를 늘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를 뒤쫒고 있는 삼성전자는 신규 파운드리 건설을 계기로 미국에서 새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파운드리 고객의 큰 손들은 첨단 반도체를 많이 주문하는 미국의 빅테크 회사들과 미국 팹리스들이다. TSMC의 주 고객도 미국의 애플(25%), 퀄컴(4.2%), 브로드컴(3.9%), 엔비디아(3.8%) 등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퀄컴, 엔비디아, IBM이 주요 고객이다.

삼성전자로서도 미국 시장에서 존재감을 더 키워야 TSMC와의 파운드리 경쟁에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앞서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 달성을 위해 기존보다 38조 원 더 얹어 171조 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SK하이닉스, 1조 들여 美 R&D 거점 세운다

최근 인텔 낸드사업부문 인수로 메모리 반도체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SK하이닉스는 10억 달러(1조1,100억 원)를 들여 실리콘밸리에 인공지능(AI)·낸드플래시 연구개발(R&D) 거점을 신설하기로 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2위인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생산시설은 없는데, 이번에 R&D 센터 건립을 계기로 SK하이닉스 역시 미국 중심의 반도체 동맹에 올라탄 것이다. 미국도 이번에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연구개발(R&D) 거점을 한국에 신설하기로 발표했다.

미국내 배터리와 전기차 투자도 가속화한다. 현대차·기아는 2025년까지 8조1,000억 원을 투자해 미국에 EV 양산 라인을 갖추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도 미국 포드자동차와 손잡고 6조 원을 투자해 EV 배터리 합작법인을 현지에 설립하기로 했다.


김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