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무력충돌에 유독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사자 해결을 강조하며 잠자코 있던 미얀마 사태 때와는 딴판이다. 중동에서 미국을 견제하고,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한 다목적 카드로 활용할 심산이다.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의 가장 강력한 기구다. 국제사회 현안에 개입해 강제조치도 행사할 수 있다. 안보리 15개 이사국이 돌아가며 한 달씩 의장국을 맡는데 5월은 중국 차례다. 안보리 의사일정을 정하고, 회의를 주재하고, 안보리를 대표해 다른 유엔 회원국이나 국제기구와 소통하는 막중한 권한을 갖는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준비하던 2017년 4월 미국이 안보리 의장국으로서 대북 공격을 거론하며 연일 핵 관련 회의를 열자 북한은 “미국이 의장 권한을 남용해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한 전례도 있다.
중국은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16일(현지시간) 안보리 긴급회의를 소집해 “미국이 국제 정의의 반대편에 서는 바람에 안보리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은 팔레스타인 국민의 정당한 권리 회복과 정치적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위해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반대로 안보리 회의가 연기되고, 초안 작성을 마친 언론성명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점을 꼬집었다. 왕 부장은 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회담을 촉구하며 필요하다면 중국이 협상을 주관할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미국의 전유물인 중동 문제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중국은 “미국이 불투명한 물밑 교섭에 치중하다 시간을 허비했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과 특수한 관계 때문에 유엔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하길 꺼린다는 것이다. 그 사이 팔레스타인의 인명 피해는 커지고 있다. 중국이 비폭력을 지지하는 국제 여론을 등에 업고 ‘미국 책임론’을 주장하기에 안성맞춤인 상황이다. 화리밍(華黎明) 전 이란주재 중국대사는 17일 “중국이 안보리 의장국이라 미국은 유엔의 분쟁 중재를 꺼린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이슬람에 대한 미국의 ‘이중 잣대’도 물고 늘어졌다. 틈만 나면 중국 신장지역 무슬림 인권 문제를 들먹이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것이다. 환구시보는 “미국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탄압하고 억압하고 살육하는 것을 용인해 인권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미국의 인권 주장은 허위”라고 날을 세웠다.
중국은 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한 나름의 해법이 있다. 2017년 7월 안보리 회의에서 소개한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네 가지 주장’이다. △양국 방안에 따른 팔레스타인 주권 인정 △모든 폭력 행위 금지 △국제사회 참여를 통한 화해 촉진 △팔레스타인 발전을 통한 평화 추구 등의 내용을 담았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중국 주도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의 주요 파트너로 삼으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왕 부장도 전날 긴급회의에서 이 같은 팔레스타인의 국가권리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강조했다. 마샤오린(馬曉霖) 저장외국어대 환지중해연구원장은 “중국의 해법은 중동 갈등의 핵심인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파리즈 메다위 주중 팔레스타인 대사는 “왕 부장의 솔직하고 책임 있는 발언을 높이 평가하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