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브걸스 같은 스타트업 

입력
2021.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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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비상장 기업들에 대한 투자 열기는 계속됩니다. 관련 기관들의 통계를 종합해보면, 지난 1분기 세계 벤처캐피털 투자금액은 130조 원 내외로 추산됩니다. 작년 같은 시기의 2배에 가깝습니다. 작년 코로나 상황에도 벤처캐피털 투자가 별로 위축되지 않았던 데 이어, 올해는 큰 성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급증 추세가 뚜렷합니다. 우리나라의 1분기 벤처투자금액은 1조5,000억 원가량으로, 역시 작년 1분기의 거의 두 배입니다. 게다가 이 수치는 여러 통계적 이유로 상당히 과소계산된 것입니다. 100억 원 이상 투자가 워낙 드물어, 그런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 주목받던 것이 보통이었는데 요즘엔 그런 소식이 2, 3일에 한번씩 들려올 정도입니다.

이처럼 벤처투자 시장이 달아오르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직업시장의 여러 변화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여러 차례 보도된 것처럼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한 개발자들에 대한 경쟁적 스카우트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이로 인해 개발자들의 연봉이 연쇄적으로 상향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연봉 상향평준화에 자본이득의 기회까지 제공하는 덕에 대기업이나 금융권, 그리고 컨설팅과 같은 이른바 좋은 직장에서 스타트업으로 이동하는 인재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유망한 스타트업은 경력직을 한 명 뽑는데 국내 10대 그룹 경력자의 지원서를 50장 넘게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동안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대한 쏠림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현상이 좋은 학벌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끼리 벌이는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스타트업을 통한 대박신화에 저커버그나 일론 머스크, 혹은 쿠팡의 김범석과 같이 명문대를 나온 젊은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물론 사실입니다. 저 역시 창업자의 학벌이 그 기업의 투자유치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국내 데이터를 통해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니콘 기업들에 대한 최근의 실증 연구들에 따르면 출신대학이나 나이가 스타트업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그리 분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업의 성공을 예측하는 데 명확히 기여하는 다른 변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창업자들이 경험한 작은 실패입니다. 큰 성공은 똑똑한 젊은 친구들이 한판에 만들어내는 영리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크고 작은 실패를 견디며 진득이 배운 이들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타트업과 유니콘의 이야기가 분분한 지금, 우리가 좀 더 진지하게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 사회가 작은 실패를 경험할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번의 실패가 인생을 나락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환경, 자유롭게 실패를 해도 됨직한 넉넉한 시도의 장, 그리고 그런 실패를 경험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기 있는지 말입니다. 그리 긍정적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입니다. 하지만 최근 음원차트 1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을 들으며 저는 작은 희망을 봅니다. 엘리트 기획사 출신이 아닌, 데뷔 10년 동안 수없는 좌절과 실패를 겪었던, 그래서 더욱더 튼튼하고 성숙해진 그런 이들이 사회 곳곳에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말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