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재보다 악재가 많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극장산업은 붕괴 직전이었다. 게다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 열기가 식지 않았다. 일본 역대 최고 흥행 영화라는 수식 정도가 비빌 언덕이었다.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기적에 가까운 흥행 기록을 쓰고 있다. 지난 1월 27일 개봉해 16일 관객 200만 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 200만4,206명)을 돌파했다.
‘귀멸의 칼날’의 성적은 국내 일본 영화 역대 흥행 순위 4위에 해당한다. ‘귀멸의 칼날’보다 앞자리를 차지한 일본 영화는 ‘너의 이름은’(2016ㆍ367만3,885명)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ㆍ301만5,165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ㆍ200만7,818명)뿐이다. 17일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흥행 수치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200만 고지를 넘어선 영화는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203만8,291명)에 이어 ‘귀멸의 칼날’이 두 번째다. 평일에만도 3,000~4,000명이 꾸준히 보는 추세를 감안했을 때 ‘귀멸의 칼날’이 올해 흥행 1위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귀멸의 칼날’의 흥행은 여러모로 의외다. 극장가는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3월 이후 ‘초토화’됐다. 관객수가 예년보다 70%가량 쪼그라들었다. 한 영화가 100만 명만 모아도 감지덕지한 상황이다. 지난해 연말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원더우먼 1984’는 54만 관객에 만족해야 했다. 앤젤리나 졸리 주연으로 눈길을 모은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5일 개봉)은 5만3,539명이 봤다. 올해 총 관객수는 1,238만7,823명. 극장을 찾은 사람 6명 중 1명이 ‘귀멸의 칼날’을 택한 꼴이다. 코로나19 시대 극장가 최고 히트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귀멸의 칼날’은 2016년 일본 만화주간지 소년챔프에 첫 연재된 동명 장편만화를 바탕으로 했다. 26부작 동명 TV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면서 극장용 에피소드까지 만들어졌다. 일본 다이쇼 시대(1912~1926)를 배경으로 식인 혈귀에게 가족을 잃은 소년 가마도 단지로가 오니(귀신)를 없애가는 과정을 그렸다. 극장판에선 단지로가 무한열차에서 동료들과 더불어 승객을 지키기 위해 오니와 싸우는 이야기를 다뤘다.
‘귀멸의 칼날’의 흥행은 팬덤을 바탕으로 했다. TV애니메이션이 국내 케이블채널에서 방송되면서 마니아층이 형성됐다. 마니아들이 반복 관람하면서 화제를 불렀고, 관객층을 넓혔다. 17일 CGV 데이터전략팀 분석에 따르면 '귀멸의 칼날'의 재관람률은 12.1%다. '소울'(4%)보다 3배 높다. 김효정 영화평론가는 “국내에도 저패니메이션 팬층이 단단한데 이들이 반복 관람을 하며 (흥행에) 힘을 발휘했다”고 분석했다. 일본에서 지난해 10월 개봉해 73일 만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치고 역대 흥행 성적 1위에 오른 점도 홍보효과를 일으켰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 덕을 보기도 했다. 대형 화제작들의 개봉이 줄어들어 장기 상영이 가능했다. 조성진 CGV 전략지원 담당은 “‘귀멸의 칼날’은 마니아 대상 영화로서 장기 상영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며 “N차 관람이 이어졌고, 새 굿즈를 수시로 개발해 팬심을 자극한 점도 효과를 봤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