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를 미끼로 수억 원대 투자금을 뜯어낸 일당이 경찰에 입건됐다. 이들은 자신들이 발행·유통하는 '명동코인'이 서울 명동 상권 부흥정책에 사용될 거라고 속여 투자자를 유치했다. 주식시장의 신규 상장(IPO)을 본떠 가상화폐를 새로 발행하는 이른바 '가상화폐공개(ICO)' 행위는 국내에서 불법이지만, 관련 처벌 규정이 없어 당국이 손 놓고 있는 틈새를 파고든 것이다.
10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서초경찰서는 사기,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가상화폐 거래소 대표 A씨를 지난달 검거해 막바지 수사를 진행 중이다. A씨는 앞서 검거된 명동코인 발행자 B씨와 공모해 자신이 운영하는 거래소에서 코인 투자자에 대한 배당 및 환전 업무를 하던 중 일방적으로 투자자들의 전자지갑을 삭제하고 코인을 상장 폐지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지난해 B씨와의 대질심문을 앞두고 잠적해 지명수배를 받기도 했다.
고소인 등에 따르면 B씨는 2019년 8월부터 오프라인 설명회 및 온라인 홍보 영상 등을 통해 투자 유치에 나섰다. B씨는 "명동코인은 매일 2%씩 배당금을 지급하고, 투자금의 400% 수익을 보장한다"고 약속하는가 하면 "서울 중구청 허가 아래 명동상인연합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명동코인 활용 사업을 할 것"이라며 투자자를 속였다. 명동을 드나드는 관광객을 겨냥해 명동코인으로 결제하면 물건값의 10%를 할인해주고 일대에 명동코인 전용 출금기를 설치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사업 계획도 구체적이었다. B씨는 투자자를 현혹하려 설명회 유인물에 출금기 설치 사진이나 대통령 사진을 싣기도 했다.
대부분 50, 60대 장년층이던 투자자들은 B씨의 법인 계좌로 투자금을 입금하고, B씨가 소개한 A씨의 거래소에 전자지갑을 개설해 코인을 받았다. B씨는 "지인을 소개하면 배당이 올라간다"는 유인책으로 투자자 규모를 늘렸다.
A씨 거래소는 첫 두 달간 투자자들에게 매일 '주가 상승분' 명목의 배당금을 코인으로 지급했다. 이 기간엔 투자자의 환전 요구에도 응했다. 그러나 이 거래소는 2019년 10월부터 갑작스레 배당을 중지하고 코인의 환전도 막았다. 투자자들에겐 "앞서 출금한 투자자들에게 금액이 과지급됐다"거나 "출금액이 너무 많아 금융감독원 제재가 내려왔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투자금 입금보다 출금 요구가 많아지면서 명동코인은 결국 거래 중단을 거쳐 상장 폐지됐다. 거래소 측은 "코인업체의 잘못"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에 지난해 1월 피해자 56명이 총 7억 원대 피해를 봤다며 A씨, B씨 등 관계자 3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인 대표 C씨는 "그간 전국의 피해자 수백 명이 산발적으로 고소를 했지만 매번 혐의 입증 실패를 이유로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며 "피의자들은 오히려 기세등등해져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투자금을 모으러 다녔다"고 주장했다.
고소인 측 법률대리인을 맡은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가상화폐 열풍에 편승한 전형적인 '배당형 투자 유치' 사기 사건"이라며 "투자 유치 단계에서 무리하게 배당을 지급하면서 결국 투자자에게 원금 손실 위험을 안긴 것"이라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원금 보장과 이자형 배당을 약속하면서 실체가 불분명한 코인 투자를 권유받는다면 투자금 편취를 노린 사기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