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본격적으로 차기 대권 준비에 들어가면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는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정 전 총리 삼파전으로 흘러가는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세 대선 주자가 난데없이 '현금 지원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액수도 어마어마한데요. 최소 단위가 1,000만 원이고, 많게는 1억 원까지 준다고 합니다. 대상은 청년입니다. 청년들이 사회 진출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돈을 국가가 주겠다고 한 것이죠.
세 사람은 3월에만 해도 기본소득, 구체적으로는 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 설전을 벌였죠. 이 지사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두텁고 빠르게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는 시기상조라며 이 지사와 각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 몇 달 뒤 세 사람은 청년들에게 현금을 서로 더 주겠다고 하니 이목이 쏠리는데요. 세 사람의 수당 경쟁은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게 공통점인데요. 다만 세 주자가 겨냥한 구체적 대상은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고졸 청년들을 겨냥했는데요. 이 지사는 앞서 4일 '고졸 취업 지원 기반 마련을 위한 업무 협약식' 간담회에서 "4년 동안 대학을 다닌 것과 4년 동안 세계일주를 다닌 것 하고 어떤 게 더 그 사람 인생에 도움이 될까"라며 "각자 원하는 바를 해보는 경험이 더 큰 교육이 될 것 같다. 세계 여행비 1,000만 원씩 대학 안 간 대신에 지원해 주면 훨씬 낫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국민의힘에선 '포퓰리즘 정책', '허경영 국가혁명당 대표 벤치마킹'이라고 공세를 퍼부었습니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이제 사탕발림 공약들도 기본 단위가 1,000만 원대"라고 비꼬기도 했죠.
이 지사는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국민의힘의 발언 왜곡이 도를 넘었다고 즉각 반박했죠. 고졸 청년들을 지원하겠다는 자신의 메시지마저 퇴색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지사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계 일주 체험은 대학 미진학 청년 지원정책에 대해 난상 토론하는 자리에서 지원 방법의 다양성을 논의하고자 아이디어 차원에서 드린 말씀이었다"며 "그런데 일부 보수언론과 국민의힘은 이를 비난의 소재로 삼았다. 본질을 조작한 정치적 공격에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전 대표는 20대 군인들을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최근 모병제 전환, 군 가산점 논란 등으로 병역 문제가 남녀 갈등으로 확산하자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 대표는 앞서 5일 유튜브 채널 '이낙연 TV' 대담에서 "징집된 남성들이 제대할 때 '사회출발자금' 같은 것을 한 3,000만 원 장만해 드렸으면 좋겠다"며 "제대 후 나아가고자 하는 분야에 도움이 될 만한 부대에 배치하는 등 군 복무가 인생에 보탬이 되도록 배려하면 어떨까"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전 대표는 20대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는데요. 그는 "청년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순간,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평등한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며 "사회출발자금이 될지 무엇이 될지 방법을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 전 대표는 같은 맥락으로 청년 주거 안정 정책도 제시했는데요. 그는 6일 홍기원 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한 '진단,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 토론회에서 "서울 1인 가구의 41%를 차지하는 청년 가구의 주거복지가 시급하다"며 "종합부동산세와 관련해 새로운 제안을 드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 전 대표는 "다주택자가 낸 종부세(종합부동산세)를 무주택 청년과 1인 가구의 주거 안정을 위해 쓰자"고 제안했습니다.
정 전 총리는 통 크게 1억 원 지원책을 내놨습니다. 다만 정 전 총리는 특별한 타깃 대상은 정하지 않았습니다. 신생아 때부터 돈을 모으게 해 모든 사회 초년생이 목돈을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하자는 게 골자입니다. 사회 불평등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으로 볼 수 있죠.
정 전 총리는 지난달 29일 광주 남구 광주대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치의 새로운 역할' 강연에서 '미래씨앗통장' 제도를 제안했는데요. 대권 도전을 공식화한 이후 처음 내놓은 공약이었죠.
그는 이 자리에서 "미래씨앗통장 제도로 모든 신생아가 사회 초년생이 됐을 때 부모 찬스 없이도 자립 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20년 적립형으로 1억 원을 지원하는 정책을 설계 중"이라며 "국가와 사회가 청년들의 자산 형성을 위해 '사회적 상속' 제도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되면 청년들이 대학 등록금이나 주거 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될 것이라며 기대했죠.
정 총리 측은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책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25세 되는 모든 청년에게 1억6,000만 원을 기본자산으로 주자"는 주장에서 착안한 정책이라고 설명합니다. 사회가 부모를 대신해 목돈을 마련해 주는 만큼, 자산 불평등 해소에 도움을 줄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죠.
정 전 총리를 돕는 의원 모임인 '광화문포럼'은 11일 조찬 강연을 열고 사회적 상속 제도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정 전 총리의 대선 공약을 조금 더 구체화하는 것이죠. 정 전 총리가 직접 기조 강연을 통해 미래씨앗통장 제도에 대해 설명할 예정으로 알려졌습니다.
세 사람이 앞다퉈 청년 현금 지원책을 발표하는 건 4·7 재·보궐선거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보선 결과 집권여당에 대한 20대 청년들의 이탈이 두드려졌죠. 선거 참패의 원인이 20대 표심을 놓친 탓이란 해석이 나올 정도였죠. 민주당에선 재·보선 이후 20대 표심 잡기가 최대 고민이 됐습니다. 내년 대선 전까지 20대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대선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위기감이 깔렸죠.
세 주자가 지방 일정을 가면 빼먹지 않고 20대 청년과의 간담회 자리를 열고 있는데, 이런 위기감이 반영된 행보로 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이 그동안 20대 문제에서 놓친 게 무엇인지 살핀 뒤 대선 전까지 이들의 마음을 돌릴 맞춤형 공약을 내놔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민주당 의원들은 잇따라 20대와 간담회를 열며 청년들과의 접점을 넓히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는 6일 20대 청년들을 초청해 날것 그대로의 쓴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죠.
하지만 여권 대선주자들의 현금 지원 경쟁이 '선심성 포퓰리즘 경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옵니다.
이들과 같은 당 소속으로 대권 도전을 시사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있는 재정 마구 나눠준다 생각하면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막연한 퍼주기 정책 경쟁에 우려를 보낸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세 사람의 공약을 조목조목 지적했는데요. 박 의원은 "1,000만 원 여행자금을 지원하고, 3,000만 원의 전역 지원금을 준다면 그 돈은 어디서 나온 것이냐"라며 "20년 뒤 스무 살이 된 청년에게 1억 원을 주려면 어떤 재정 전략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냥 아이디어 차원이었다고 하면 국민은 '민주당이 이제 막 던진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돈을 얼마 주겠다는 방식으로 정책 노선이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꼬집었죠.
홍준표 무소속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잔돈 몇 푼으로 청년들을 유혹하는 데 열심"이라며 "선심성 퍼주기 복지에 나라 곳간이 텅 비어 가고 있는데 정책은 바꾸지 않고 잔돈 몇 푼으로 청년들을 유혹만 하니 참 어이없는 나라가 돼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마치 이재명당, 이낙연당, 정세균당이 따로 있는 듯 당적 책임 없는 아이디어를 대선 의제화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런 방식이라면 우리가 요즘 문제 되는 포퓰리즘 정치를 어떻게 비판할 수 있느냐"고 일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