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법제도는 일제강점기 때 받아들인 제국(帝國) 시절의 독일 제도에 해방 후 도입된 영미식 제도가 접목돼 발전해 왔다. 법무부 장관 외에 검찰총장을 두게 된 것도 그런 배경하에서였다. 정치적인 법무장관으로부터 자유로운 검찰총장을 두어서 검찰권 독립을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검찰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현 여권의 오래된 입장이었다. 검찰총장 임기를 2년으로 보장한 조치는 그 노력의 결실이었다. 임기 중이라도 해임할 수 있다는 단서가 달려 있는 3군 참모총장과 달리 검찰총장 임기에는 그런 조항이 없다. 그래서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임기 중에 해임할 수 없다고 해석된다. 지금 여당이 만년 야당을 할 줄 알고 이런 조항을 밀어붙였던 것이다.
우리 검찰은 기소권은 물론이고 수사지휘권과 독자 수사권을 갖고 있어서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검찰을 사법부의 일원으로 구성한 유럽 몇몇 국가와는 달리 우리는 법원과 분리된 영미식 검찰 제도를 따랐다. 오늘날 우리 검찰은 검찰총장을 정상으로 대검, 고검, 지검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조직을 자랑한다. 교도소 행정 외에는 별다른 고유 업무가 없는 법무부 장관보다 거대한 조직을 이끌고 있는 검찰총장이 실세임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검찰을 개혁하려면 이런 큰 그림을 보고서 접근해야 하는데, 현 여권은 피해자 입장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기보다는 단순히 공수처를 만들어서 검찰을 견제토록 하겠다고 했으니 그 자체가 하책(下策)이다. 집값이 오르니까 부동산감독원을 별도로 만들겠다는 유치한 발상과 똑같다. 검사는 범죄를 인지해도 경찰이 수사를 해서 가져오기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주장은 자체가 한편의 코미디이다.
검찰의 수사권 독점은 문제지만 현 정부가 그것을 핑계로 검찰을 해체하려고 덤벼든 것은 자기모순이다. 현 정권은 검찰을 통해 이전 정부에 있었던 일을 사법적으로 무리하게 재단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 사건을 수사하다가 밀려난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해서 전 정권 문제를 수사하게 했고, 그 공을 높이 사서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그런 윤석열이 조국을 수사하고 기소하자 추미애 장관을 시켜서 몰아내려다가 오늘날의 ‘윤석열 대망론’을 만들어 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검 중앙수사부를 없애 버렸는데, 대검의 존재 이유를 절반 정도는 없애 버린 조치였다. 대검 아래에 있는 고검은 원래 불필요한 조직이다. 심급(審級) 때문에 고등법원은 필요하지만 구태여 고등검찰청이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명칭과는 달리 잘나가던 검사가 좌천되어 가는 곳이 고검이다. 윤석열도 국정원 수사팀에서 밀려난 후 한동안 고검을 떠돌았다.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지자 윤석열은 특검팀에 합류했고, 현 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장이 됐다.
미국 법무부 산하에는 93명의 연방지검장이 이끄는 지방검찰청, 그리고 연방수사국(FBI)이 있다. 미국에선 법무장관이나 지검장이 검사나 수사관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면 사법방해죄를 구성한다. 법무장관 외에 검찰총장을 두고 있는 민주국가에서 우리처럼 검찰총장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없다. 검사는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기에 그들의 성적은 법원에서 판가름 날 뿐이다. 이제 검찰총장이란 자리는 너무 정치화되어서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과연 검찰총장이 필요한 직위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