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한 '한강 대학생' 보도

입력
2021.05.06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993년 전북 부안군 위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는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이었다. 또한 언론 참사였다. 선장의 종적이 묘연하자 언론은 “항구에서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말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경쟁이 붙으며 “혼자 탈출해 섬으로 숨었다” “중국으로 도주했다”는 설까지 대서특필했다. 경찰은 그를 지명수배했고 “선장이 살아있을 확률이 98%”라고 발표했다. 배를 떠난 적 없던 그가 시신으로 발견되고서야 ‘도피범’ 창조자들은 입을 다물었으나 죗값을 치른 것은 아니었다.

□ 불행이 참사가 됐던 그 일을 지금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한강 대학생 손정민씨 사망사건에 대해 경찰은 아직 수사 중인데, 언론과 대중은 어느덧 한 사람의 ‘범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친구 A씨를 겨냥해 “신발 왜 버렸나” “방어기제로 최면수사 안 돼”라는 손씨 부친의 발언이 기사 제목으로 달리고,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말이 가감 없이 보도된다. 단정적 비난 댓글이 벌써 나온다. 경찰이 부합하는 증거를 못 찾거나 실족사 결론에 이르기라도 하면 부실 수사를 비난할 판이다.

□ 날벼락처럼 아들 잃은 부모 심정이야 백번 이해하나, 애끊는 고통에서 비어져 나오는 모든 말을 언론이 담아서는 안 된다. 무고할 수도 있는 특정인을 향한 의심과 원망에 마이크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취재한 모든 것을 보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기자의 착각이다. 보도하지 말아야 할 것을 걸러내는 게 언론의 역할이고, 피해자를 만들 위험이 있다면 낙종을 하는 게 옳다. 손씨가 살해됐는지 A씨가 결백한지 판단할 팩트 없이 추측을 전달하는 것은 한 인생을 건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 익명의 다수는 감정적이고 편파적이게 마련이다. 이에 영합하는 매체가 득을 보는 구조라는 게 문제다. 대중이 원하는 기사는 오보일지언정 페이지뷰를 높여줘 이득이 되고, 그 흐름이 거대할수록 책임은 희박해져 손실이 적다. 신중한 매체는 칭찬받는 게 아니라 잊힐 뿐이다. 기자들이 이런 구조의 톱니바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서해훼리호 선장 유족에게 대못을 박았던 그 일을 내가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자각해야 한다. 지금은 수사 결과를 기다릴 때다.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