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그린 허버트 G 웰스의 소설 '우주전쟁'은 1898년 발간된 후 수차례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되었다. '시민 케인(1941)'을 만든 거장 오손 웰스가 1938년 '우주전쟁'을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하여 공개했을 때는 많은 사람이 실제 상황이라고 착각해 패닉에 빠진 사건도 벌어졌다. 영화 '우주전쟁(1953)'은 당시 미소 냉전의 공포를 은유한 외계인 침공 영화의 대표작이 됐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우주전쟁(2005)'은 원작의 공포를 화려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작 '우주전쟁'의 내용을 지금 보면 아주 간단하다. 외계에서 온 물체에서 문어처럼 생긴 화성인이 나와 지구를 공격한다. 전투 기계인 트라이포드가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학살하지만, 지구의 군대와 무기로는 물리칠 수 없다. 그러나 지구의 세균에 면역이 없었던 화성인은 자멸하고 만다. 결말이 난데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중남미를 침략한 스페인군이 원주민에게 병을 옮겨 잉카가 멸망하고, 아프리카를 침략한 유럽인들이 풍토병에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설득력이 있는 설정이었다.
왓챠에서 공개된 드라마 '우주전쟁'도 기본 설정은 비슷하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침공한 외계인이 인간을 공격한다. 현재로서 화성인은 없다고 밝혀졌으니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외계인의 신호를 처음 발견한 것은 프랑스의 천문학자 카트린이다. 외계 생명체를 찾아온 카트린은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한다. 그들의 신호를 분석하던 카트린은 자신이 보냈던 신호를 그들이 포착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지구를 침공한 것이다. 그들은 과연 어떤 목적으로, 얼마나 오래 인간을 관찰하고 있다가, 왜 지금 공격을 시작한 것일까?
원작의 팬은 아쉽지만, 트라이포드는 나오지 않는다.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은 걸작이었다. 미지의 존재가 아무런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무차별 학살을 할 때의 공포를 너무나도 잘 그려냈다. 심장이 당장 멈출 것만 같은 긴장감, 나약한 자신이 한없이 무력해지는 순간을 스필버그의 영화는 서늘하게 보여준다. 거대한 트라이포드가 나타나고 광선을 쏘아대며 인간을 증발시켜버릴 때 아찔한 공포와 쾌감을 느낀다. 거대한 트라이포드가 도시를 부수고, 인간을 포획하는 장면은 '우주전쟁'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이번 '우주전쟁'에서는 물리적 무기가 아니라 전자기파로 인간을 학살한다. 영국의 뇌과학자인 빌은 외계인의 신호를 분석하면서 위험을 감지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신호가 아니라 인간의 뇌를 공격하는 무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빌은 정부에서 일하는 아들 댄에게 사실을 알리고, 전 부인 헬렌을 구하기 위해 급히 달려간다. 전자기파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폐쇄된 공간이나 물속, 지하 등에 숨는 것이다. 빌은 헬렌과 엘리베이터에 들어갔고, 깊은 곳의 지하철이나 지하도 등에 있었던 이들만 살아남는다. 거리에는 외계인의 공격으로 죽은 사람의 시체가 즐비하다.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전자부품을 쓰는 기계는 모두 망가져서 사용이 불가능하다.
원작과 영화처럼 스펙터클한 장면은 없다. 외계인의 공격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대부분의 사람이 죽었다. 거리에는 개처럼 생긴 로봇이 돌아다니며 살아남은 사람을 죽여버린다. 카트린, 빌 그리고 생존자들은 로봇을 피해 다니며 은신처를 찾는다. '우주전쟁'은 종말 이후의 세계를 그린 아포칼립스물처럼 전개된다. 그러나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지는 일반적인 아포칼립스물과는 다르게 '우주전쟁'에는 거대하고 명확한 적이 있다. 정체도 모르고, 이유도 모르는 외계인.
'우주전쟁'에는 세 개의 이야기 흐름이 있다. 천문학자인 카트린을 중심으로, 프랑스의 군인이 외계인과 전투를 벌이며 조금씩 우주 전쟁의 주도권을 찾는 이야기. 뇌과학자인 빌이 헬렌과 함께 파괴된 로봇을 분석하며 외계인의 정체를 밝혀가는 이야기. 그리고 사라와 조너선의 가족이 생존하는 이야기. 카트린과 빌은 과학 담당이다. 각각 천문학과 뇌과학이라는 전문 분야를 활용하여 외계인이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인간을 공격하는지 연구하고 밝혀낸다.
사라의 가족은, 위기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이 경험할 법한 상황들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관계가 소원했던 남편 조너선은 침공 당시 프랑스에 있었다. 조너선은 걸어서 영국으로 돌아오던 중에 클로이와 그녀의 아들 사샤를 만나 동행한다. 사라는 딸 에밀리, 아들 톰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아프리카 수단에서 내전을 피해 망명한 카림을 만나고, 빌도 만나게 된다. 시각장애인인 에밀리는 다시 앞이 보이게 되는 경험을 한다. 외계인이 로봇에 보내는 신호에 반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계인의 로봇 개는 눈이 없지만 다른 방식으로 물체를 감지한다.
에밀리는 이후 '우주 전쟁'의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계인이 갑자기 침공을 했다. 보통 국가 간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서서히 긴장이 고조되는 이유가 있다. 오랜 역사를 통해서 쌓인 감정이 있고, 영토 분쟁이나 직접적인 충돌이 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전쟁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대화 창구는 남겨 둔다. 그래야만 언젠가 전쟁을 끝내고, 서로의 피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 전쟁'에서는 적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다. 그래서 더 심각한 공포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강력한 적과 싸운다는 것은.
외계인의 문명이 지구보다 우월한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아직 달 이상을 나가지 못했지만, 그들은 먼 우주 어딘가에서 지구로 왔다. 그들은 인간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 서양인의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 침탈사가 증명하듯 우월한 힘을 가진 존재는 대부분 약자를 파괴하고 절멸시킨다. 원작 '우주 전쟁'의 탁월한 점은 이유 없는 폭력의 공포다.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절대적인 폭력을 당한다면 두려움과 공포는 무한대가 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폭력에서 도망칠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에밀리는 카림에게 독백처럼 묻는다. 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걸까요. '우리가 달라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라고 카림은 말한다. 인간은 늘 그렇게 다른 종족, 민족을 죽이며 살아왔다. 때로는 그저 재미를 위해 인간을 죽이기도 한다. 외계인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기본적인 생각과 감정은 유사할 수 있다. 외계인이 인간을 하등 생물로 판단한다면, 어떤 목적을 위해 인간을 이용하고 죽이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서양인이 흑인을 동물로 생각하여 과거에는 인권을 주지 않았고, 동물권이 이제야 논의되기 시작하는 것처럼.
'우주전쟁'은 시즌 1의 마지막에 가서야 인간과 외계인의 직접적인 접촉을 보여준다. 인간과 외계인의 전투를 그리기보다 종말의 순간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에 더 집중했다. 시즌 2에서는 외계인의 목적이 밝혀질까? 에밀리와 사샤 등이 외계인의 신호에 교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고 싶은 것은 외계인의 정체이고, 목적이지만 시즌 2에서는 스펙터클도 원한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와 극복만으로 계속 긴장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